침묵하는 기념비가 다시 농담을 시작할 때까지
일기예보의 리듬을 조작했다 끝이 뾰족한 풍향계가 망가져 있었다
정말 그래, 검은 뒷모습에 음각한 여름에서 테두리만 남은 눈동자가 누수 되고 있어
우리는 이 마을의 유령을 공유하고 있다는 기우, 그것을 키스 대신 함께 마셔버렸다는
어린 손등의 보존을 위해 피아노는 가끔만 쳤다
끝이 뭉뚝해진 불협화음이 붉은 허기 속으로 용해되고 있었다
정말 그렇다고, 아주 느린 곡 하나가 아주 오래 반복되고 있다고
우리는 아주 우연한 오후에 서로에게 누구 차례인지 잊어버린 답장을 쓰다가 내 뒷모습과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을 유리창을 통해 훔쳐보는 나를 떠올리겠지만 그때쯤에 우리는 아주 우연히 부재 상태일 것이므로
레퀴엠 악보로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가파른 계단과 언덕에 접힌 선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정말 그렇다니까, 9월에 젖은 성냥의 가망은 창백한 미래에 불을 붙인다니까
빗방울의 내압을 견디느라 딱 일인분만큼만 무거워진 검은 우산 속
어린 발등의 실망을 위해 피아노는 조율하지 않았다
반복이 없는 시를 쓰고 싶었다
기억력과 영혼을 맞바꾼 것만 같은 기우, 불에 탄 마을에서 단둘이서 그을음을 마셔버린 후로
벽과 손톱과 장미 가시가 동시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정말 그래, 우리는 그것을 비밀이라고 불러 눈동자의 테두리가 구운 생선 껍질처럼 벗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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