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안 - 지빠귀를 시작할 것

 

웅진북센 아무는 밤 259 민음의시, One color | One Size@1 오빠생각(일반판):김안 시집, 문학동네

 

 

 성난 지빠귀 한 마리

 녹슨 나무 꼭대기에 올라

 모두가 버린 모두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노래는 지빠귀의 몫.

 입 없는 사람들, 포식자가 되는 법을 잊어버린 맹수들이

 매일 밤 몸 바깥으로 말들을 밀어내다가 저마다의 말과 말 사이에서 길을 잃어도

 노래는 없고

 태초의 독백만 내일 또다시 반복된다.

 지빠귀의 언어로, 지빠귀의 언어로.

 무감과 무통의 천국에서

 사람의 입을 만드는 것은 비명일 뿐.

 그러니 지빠귀의 언어로

 난폭하게 자라나는 납빛 건물 꼭대기에 오를 것.

 그리고

 흉골 속 낡은 악기를 꺼내 이 계절을 멈출 것.

 말이 아닌 겯지른 어깨들로

 말이 아닌 노래들로

 선언할 것.

 지빠귀의 언어로, 지빠귀의 언어로,

 말을 포기할 때 노래가 시작되고

 비로소

 지빠귀의 언어로, 지빠귀의 언어로

 지빠귀가 시작된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안 - 환절기  (0) 2021.02.01
김안 - 불가촉천민  (0) 2021.02.01
김안 - 개미집  (0) 2021.02.01
김안 - 연흔  (0) 2021.01.30
김안 - 폭설  (0) 2021.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