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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 무중력 실험실

 

친애하는 사물들:이현승 시집, 문학동네 생활이라는 생각 : 이현승 시집, 창비

 

 

 해가 짧아졌다

 성분만 헌혈되고 몸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피처럼

 저녁이 천천히 밀려온다 방이 깜깜해졌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투명한 허공으로

 별빛은 더 멀리까지 보이고

 먼 소리까지 지척인 듯 들린다

 

 영하의 거리에선 얼어죽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밤에 자라는 아이들은 더 오래 자라고

 성장통을 앓는 아이들의 밤이 길어진다

 

 눈물이 마른다면 그건 다만 옮겨가는 일일 뿐인데

 나무의 열매로부터 나무가 자라고

 인간의 몸에선 다른 인간이 태어나고

 피부에서 빠져나간 수분 때문에 몸무게가 줄까?

 

 사람들이 많아지고 건물들이 늘고 삼림이 울창해지는 것이

 어째서 더 무거워지는 일일까?

 하늘을 나는 새들 때문에 공기가 더 무거워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균형을 잡고 있던 공터의 시소가 스르르 기울어질 때

 결정적이고도 무심한 공기 한 줌이 시소의 한쪽으로 얹혀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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