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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 추리극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시집, 창비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 안희연 시집, 창비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안희연 시집, 현대문학 당신은 우는 것 같다, 미디어창비

 

 

 천사, 영혼, 진심, 비밀......

 더는 믿지 않는 단어들을 쌓아놓고

 

 생각한다, 이 미로를 빠져나가는 방법을

 

 나는 아흔아홉마리 양과 한마리 늑대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이유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매일 한마리씩, 양은 늑대로 변한다

 내가 아흔여덟마리 양과 두마리 늑대였던 날

 뜻밖의 출구를 발견했다

 그곳은 누가 봐도 명백한 출구였기 때문에

 나가는 순간 다시 안이 되었고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더는 믿지 않기로 했다

 미로는 헤맬 줄 아는 마음에게만 열리는 시간이다

 

 다 알 것 같은 순간의 나를 경계하는 일

 하루하루 늑대로 변해가는 양을

 불운의 징조라고 여기는 건

 너무 쉬운 일

 

 만년설을 녹이기 위해 필요한 건 온기가 아니라 추위 아닐까

 안에서부터 스스로 더 얼어붙지 않으면

 

 불 꺼진 창이 어두울 거라는 생각은 밖의 오해일 것이다

 이제 내겐 아흔아홉마리 늑대와 한마리 양이 남아 있지만

 한마리 양은 백마리 늑대가 되려 하지 않는다

 

 내 삶을 영원한 미스테리로 만들려고

 한마리 양은 언제고 늑대의 맞은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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