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기 위해 기둥 하나를 들였다.
먼저 간 행인들은 허술하다 했지만 눈 덮인 미래의 풍경 속으로
발을 헛디딜 때에도
멱살을 움켜쥔 무수한 일상에 고개 숙일 때에도
굽어가는 기둥 하나로 직립할 수 있었다.
사막과 황무지를 지나는 동안
기둥과 함께 버려진 인연의 미라를 본 적도 있다.
인연의 황혼을 믿는다면 그들의 내세에는
무관심의 누더기가 무르팍을 덧댈 텐데.
사랑을 배운다는 건 쓰러지는 기둥에 붙들려 무릎 꿇는 것.
한 생애를 지지대 삼아 균형을 잡아가는 것.
또 다른 기둥을 만나 지붕을 올리고
서로의 천장을 바라보며 잠들기 위해서,
청춘의 저울질은 그토록 수북이 위태로웠던가.
삶은 매번 죽음을 누일 언덕을 굽어보다가
기둥을 짊어진 채 산비탈을 오르내린다.
머물다 간 엄살마저 약수처럼 흐르면
부드럽게 길들여진 이별의 생면부지를 기억한다.
척추라는 슬픈 저녁을 수소문하던 민가의 불빛.
집집마다 흰개미가 달려드는 뒷모습을 어루만지며
썩은 기둥으로 만든 신전의 예배당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