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자가 나를 사랑한다.
나는 독일에 가본 적이 없고 독일 여자는 독일을 잘 모른다.
모른다는 가능성은 사랑과 무관한 일이지만
독일은 언제나 가책을 느낀다.
어떻게 처음 떠올린 사람에게 그런 억양을 주었을까?
독일 여자가 사랑하는 나는 가능한 한 독일에 가까운 일들을 생각한다.
라이카 카메라와 전차 군단과 맥주 그리고 독일 마을
독일 여자가 사랑하는 나는 점점 더 관광지가 되어간다.
관광지에 가면 평화로운 자세를 요구하는 폐허가 있고
폐허를 설명하기 위해 독재자의 이름이 친근하게 오르내린다.
독일 여자는 그가 독일과 무관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도 역사가 될 수 있다고 내가 말했다.
독일 여자는 자신의 억양이 어머니를 닮았다며 한숨을 쉰다.
그것은 독일과 무관했지만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다.
독일 여자는 어디에서나 나를 사랑하고 나는 독일 여자의 억양을 흉내 낸다.
서가에 장식된 베를린 장벽의 돌조각처럼 나의 억양도 차고 지글거린다.
그러면 고국이란 단어를 나누지 못한 유년이 조금 쓸쓸해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 날에도 독일 빵집과 독일 안경원은 친절하거나 불친절했다.
머지않아 사라질 가게의 주인들은 고국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사랑은 서로 다른 국적기를 편하다고 말하는 공기 중에만 떠 있는 것일까?
독일은 여전히 가책을 느낀다.
독일 여자가 사랑하는 나에게 아무런 가이드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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