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앉았다 빛의 말뚝에 묶인 흑염소처럼
그 시각 공터는 피둥피둥 굴러가고 있었겠지만
과도를 든 태양이 자신의 허리를 돌려 깎는 중이었겠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주머니 속의 푸른 자두가 붉은 과즙을 흘릴 때까지
어둡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몰라서
누군가 웃었던 것 같은데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를 이어
죽음을 푹푹 퍼올린 것 같은데
둘 셋 넷 혹은
다섯부터 열까지도 사랑하는 게
우리의 내력이니까
단 하나의 비스킷에 모여든 불개미들처럼
단 하나의 공포밖에 몰랐으니까
둘러앉았다
존중할 수 없는 것들을 존중하면서
충분히 곤란해하면서
표범의 송곳니처럼 성큼 다가오는 웃음도 섞였던 것 같아
흐흐흐
우는 소리로 웃지 말라고
좀
우리 중 하나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어디든 나가볼까
우리 중 하나 죽어나갈지 모르겠지만
태양은 자신의 허리를 길게 길게 돌려 깎는 중이겠지만
공터의 빛은 끊어질 리 없겠지만
화병에 꽂힌 해바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우리 중 하나 코를 박고 킁킁 냄새 맡았던 것 같다
빛의 기둥에 묶인 순한 염소들
이거 아직 살아 있을까
다 듣고 있을까
냄새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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