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할 수 있는 산책 당신과 모두 하였지요
사랑하는 이여 제라늄은 원소기호가 아니죠
꽃 몇 송이의 허리춤을 자른다고
화원이 늘 슬픔에 뒤덮여 있는 건 아니겠지만
안 잘리면 그냥 가자
꽃의 살생부를 뒤적이는 세심한 근육을
우린 플로리스트 플로리스트라고 하지요
꽃범의 꼬리 매발톱
모종의 식물들은 죽은 동물들이 기어코 다시 태어난 거죠
거기 빗물에 장화를 씻는 사람아
가을의 산책은 늘 마지막 같아서
한 발자국에도 후드득
건조하고 낮은 짐승이 불시에 떨어지는 것 같죠
나의 구체적 애인이여
그래도 시월에 당신에게 읽어 준 꽃들의 꽃말은
내 편지 다름 아니죠
붉은 제라늄 엉망인 심장
포개어진 붉은 장화
아네모네 아네모네
나 지옥에서 빌려 온 묘목 아니죠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동혁 - 속죄양 (0) | 2021.01.12 |
---|---|
성동혁 - 니겔라 (0) | 2021.01.12 |
성동혁 - 할렐루야 이제는 이 말에 위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간 (0) | 2021.01.12 |
안희연 - 피아노의 병 (0) | 2021.01.12 |
안희연 - 백색 공간 (0) | 2021.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