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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 파로키

 

[민음사] 작가의 탄생 유진목 시집 [민음의 시 275 양장 ] 연애의 책, 삼인 식물원, 아침달 시인 목소리, 북노마드 산책과 연애, 시간의흐름

 

 

 그 집에서 함께 사는 동안에

 시간은 해가 지고 떠오르는 것

 

 구름

 비 

 바람

 눈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는 날씨

 

 달이 뜨고

 별이 지고

 

 밤은 산책에서 돌아오는 것

 

 폭우와 폭설과

 가뭄과 가난과

 

 그 집에서 사는 동안에

 해는 길어지고 짧아지는 것

 

 내가 말하면

 파로키는 돌아본다.

 

 내가 부르면

 파로키는 다가온다.

 

 내가 굶으면

 파로키는 말라 간다.

 

 내가 아프면

 파로키는 신음한다.

 

 내가 잠들면

 파로키는 사라진다.

 

 내가 꿈꾸면

 파로키는 나타난다. 

 

 뒷문 밖에는 죽은 나무가 있고

 

 어떻게 지내?

 

 잘 지내

 

 시간 되면 보자

 

 그래

 

 인간은 거짓말을 하고

 

 나는 죽은 나무를 바라보며

 파로키에 대해 쓰고 있다.

 

 커튼의 두께

 카펫의 그늘

 

 파로키가 무엇인지 인간은 물을 것이다.

 

 파로키는 인간이 아닌 모든 것

 살아 있을 필요가 없는 인간이 아닌 다른 것

 

 파로키

 

 세상에는 죽는 게 훨씬 나은 인간들이 있어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어

 

 안타까운 일이지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고

 인간은 아무에게나 말한다.

 

 파로키

 

 나는 시를 써서 죽게 될 거야

 

 죽는 게 훨씬 나은 인간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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