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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 B101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를:송승환 시집, 문학동네 전체의 바깥:송승환 비평집, 문학들 이노플리아 드라이 아이스 송승환 시집, One color | One Size@1 문학과지성사 클로로포름 -문학과지성 시인선 402 측위의 감각, 서정시학

 

 

 1

 

 테트라포드

 

 재와 광선은 하나다

 해와 시체는 하나다

 새와 바위는 하나다

 

 하나다

 하나다

 하나다

 

 나는

 

 검은 부두가 올려다보이는 선창에서 빗소리를 본다 붉은 집에서 새어나온 불빛들 파도에 젖는다 진홍빛 물결이 휘감아 돈다 나는 빛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수평선이 무너진다 선실 천장에 금빛 물그림자 출렁인다 

 

 나는 비를 만진다

 

 모든 것이 잠긴다

 

 밤은

 

 나는

 

 

 

 2

 

 큰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시계가 있다

 

 성당은 바다 속에 있고 천사는 밀가루 반죽 속에 있다

 안개는 철제 침대를 흐리고 눈은 초원에 쌓인다

 피아노는 지중해에 있고 책상은 피레네에 있다

 아이는 터널 속에 있고 젊은 엄마는 철로에 있다

 

 배가 움직인다

 시체들이 해류를 따라 떠돈다

 

 살아 있는 누이는 죽은 자다

 죽은 자만이 나의 가족이다

 

 밤의 대기는 멈춰 있다

 

 나는 난바다를 가로질러 나아간다

 

 나는 뱅골 만을 지나고 있다

 나는 아라비아 해를 지나가고 있다

 나는 케이프타운을 돌아서고 있다

 나는 기니 만에 접어들고 있다

 

 나는 대서양을 횡단하고 있다 

 

 새가 돌아온다

 

 너는

 

 

 3

 

 나는 밤의 해저에서 서른세번째 밤과 낮을 보낸다

 

 나는 거대한 도시의 종이를 뜯어낸다

 나는 무너지는 다리의 흙먼지를 맡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 라듐의 방출을 듣는다

 

 나는 해일이 지나간 건물 옥상 위에 있다

 

 배가 움직인다

 

 나는 종이로 장미를 접는다

 

 나는 장미에 불을 붙인다

 

 나는 사그라드는 불꽃 속에서 초록 문자를 꺼낸다

 

 재가 움직인다

 

 

 4

 

 시멘트는 희거나 검거나 잿빛이다

 

 마침내 나는 무덤이 보이는 모텔에 있다 땅속에 파묻힌

 아주 멀리 흙은 높고 두텁다 밤은 끝없이 검다 나는 눕는다 하수구로 쓸려가는 물소리가 머리를 관통한다

 

 붉은 빛

 흰 종이 

 

 나는 말하지 않는다 밤의 건축물이 솟아오른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밤의 타이어는 질주한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밤의 침묵은 왜 투명한 빛이 나는지

 

 돌아본다

 돌아선다

 

 처해 있다

 

 재의 밤을 태운다

 

 나는 처해 있다

 

 너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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