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로 인해 나는 세계를 경청하고
너로 인해 나는 세계를 오독한다
너로 인해 획을 긋고 지나가는
수많은 시간들에게 목례를 보내고 너로 인해 나는, 가여운 삶을
옹호한다
너는 소름 끼치는 전율이거나 벼랑이지만 너로 인해 나는 한 번도 환멸이라는 역에 내린 적이 없다
너는,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종이거나 아주 낮은 곳에서 세계를 계측하는 추인 듯하다
말라붙은 생선 비늘 같은 날들이 불 꺼진 발등을 밟고 지나간다
한 점 바람도 없는데 끊임없이 제 몸에 무늬를 새기는 못물 위로 결결
슬픔이 떠밀린다 그러나,
너로 인해 우주는 황혼의 식탁 위에 천 개의 숟가락을 가지런히 얹고
너로 인해 소요로 가득하던 내 안의 계단들이 폭설 속에 묻힌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지소 - 다정한 모자 (0) | 2020.11.30 |
---|---|
유지소 - 그 해변 (0) | 2020.11.30 |
송종규 - 아침의 한 잎사귀 (0) | 2020.11.29 |
송종규 - 방어가 몰려오는 저녁 (0) | 2020.11.29 |
송종규 - 트럼펫 (0) | 2020.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