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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유마경] 제자, 보살들의 문병

 

밀크북_2 세상의 모든 최대화, One color | One Size@1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 황유원 시집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4)[ 양장 ] 예언자, 민음사 일러스트 모비 딕 슬픔은 날개 달린 것:맥스 포터 장편소설, 문학동네

 

 

 사리불의 좌선

 그때, 리차비족의 비말라카르티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내가 병들어 병상에 누워 있는데, 아라한이며 완전한 지혜의 소유자인 여래는 나를 마음에도 두지 않고, 동정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문병할 사람을 아무도 보내 주지 않는 것일까?'

 그때 세존은 비말라카르티가 이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장로인 샤리푸트라에게 일렀다.

 "샤리푸트라여, 비말라키르티에게 문병을 가라."

 이 말을 들은 장로 샤리푸트라는 세존에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리차비의 비말라카르티에겐 문병을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 제가 어떤 나무 밑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비말라키르티가 역시 그 나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샤리푸트라여, 당신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좌선의 수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참좌선이란 것은 몸도 마음도 삼계 가운데 나타나지 않게끔 좌선을 해야 하는 겁니다. 멸진에 들어간 그대로 있으면서 행,주,좌,와가 나타나 있는 것 같은 좌선을 하시오. 이미 획득한 성자로서의 모습을 버리지 않은 채, 보통 범인의 성격을 나타내는 그런 좌선을 하시오. 당신의 마음이 안에도 없고, 밖의 물질에도 향하지 않게끔 좌선을 하시오. 윤회에 속하는 번뇌를 끊지 않은 채 열반에 들어갈 수도 있게끔 좌선을 사이ㅗ. 대덕 샤리푸트라여, 모두 이렇게 좌선을 행하게 되면, 세존은 그들을 좌선하는 사람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말을 듣고 저는 그가 말한 진리에 대해 반박할 수가 없어 잠자코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로서는 이 고귀한 선비의 문병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련의 설법

 그래서 세존은 장로인 마하 마우드가리야야니 푸트라에게 말하였다.

 "네가 비말라키르티의 병을 위문하거라."

 마우드가리야야니 푸트라도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그 고귀한 선비의 문병은 저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런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즉 언젠가 바이샬리 큰 성의 어느 네거리에서 재가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비말라카르티가 와서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마우드가리야야니 푸트라여, 흰옷의 재가자들에게 당신처럼 설법을 해서는 안 됩니다. 대덕이여, 법은 여래의 교법대로 말해야 합니다. 법은 유정이 아니고 유정의 더러움을 떠난 것입니다. 자아가 없고 욕망의 더러움을 떠나 있습니다. 법에 수명이 없고 생사를 떠나 있습니다. 개아가 없고 시간적으로 앞과 뒤의 극한이 없습니다. 법은 적정에 의해 성격지어져 욕망의 대상이 아니고, 대상이 없는 그대로이며 문자로 표현되는 일이 없고, 모든 말이 끊어진 것입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며, 모든 사상의 물결과 떨어진 것입니다. 모든 것에 편만하여 허공과 같습니다. 색채도 공통의 성질도 형태도 없으며, 모든 움직임과 떨어져 있습니다.

 내것이란 것이 없고 내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습니다. 표상하는 일도 없고 심의라든가 지식이라든가를 떠나 있습니다. 필적하고 상대하는 것이 없으므로 비교될 것이 없습니다. 대응할 원인도 없고 연으로 설정될 것도 없습니다. 법계 안에 집약되기 때문에 모든 법은 평등하게 두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여의 뒤를 좇는 것입니다. 다만 뒤를 좇지 않는 본성이기는 하나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므로 진실한 극한까지 도달합니다. 여섯 가지 감각의 대상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멈추는 일이 없기 때문에 어디로 가는 일도, 어디로부터 오는 일도 없습니다. 법은 공성 속에 집약되어 무상으로 나타나게 되고, 무원의 성질이 있는 것입니다.

 분별하는 일도 없고 부정하여 없애는 일도 없습니다. 버리는 일도 없고 세우는 일도 없으며 생도 멸도 없습니다. 돌아갈 마지막의 의지할 곳도 아니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마음이 미치는 범위를 넘고 있습니다. 높아지는 일도 낮아지는 일도 없고 정지하여 움직이지도 않으며, 모든 움직임을 떠나 있습니다. 대덕 마우드가리야야니 푸트라여, 이같은 법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대관절 어떤 것이겠습니까. 법을 말한다는 것은 벌써 있지도 않은 것을 증광하여 말한 것입니다. 만일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또 중광된 것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점에 유의하여 법을 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신은 먼저 사람들의 기근 능력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지혜의 눈으로 잘 내다보고, 대자비심을 일으켜 대승을 찬양하고 불타의 은혜를 생각하여 마음을 깨끗이하고, 또 법의 가르침에 잘 통해 있는 말로써 삼보 뒤를 이어 가기 위해 당신은 법을 말해야 합니다.'

 이같이 그가 설법했을 때, 세존이시여, 가장들의 이 모임 속에서 8백 명의 가장들은 무상하고 또 완전한 깨달음에 대해 발심했습니다. 저는 그 이상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까닭에 그 고귀한 인물의 문병은 갈 수 없습니다."

 

 대가섭의 행걸

 그래서 세존은 장로인 마하 카사바에게 말하였다.

 "카사바여, 비말라키르티에게 병 위문을 가거라."

 마하 카사바가 또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문병은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에 탁발을 하러 간 일이 있습니다. 그때 비말라키르티가 거기에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인 부호의 집을 피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집에만 가는 것은 대덕 마하 카사바의 자비심이 편파적이기 때문입니다. 대덕이여, 법은 평등정신에 있어야만 합니다. 언제나 모든 사람을 생각하면서 먹을 것을 받아야 합니다. 먹는 것을 얻지 않기 위해 먹을 것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개체로서 생각하는 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먹을 것을 받아야 합니다. 마을은 텅 비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을로 탁발하러 들어가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들을 성숙시키기 위해 마을로 들어가야 합니다. 불타의 혈통의 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집에 들어가야 합니다. 받지 않음으로써 먹을 것을 받아야 합니다. 빛을 바라봄에는 날 때부터 소경인 것처럼 하고, 소리를 들을 때는 메아리와 같다고 생각하며, 냄새를 맡을 때는 바람과 같다고 생각하고, 알고 가리는 일이 없이 음식을 맛보며, 접촉하는 일이 없이 앎을 가지고 대상에 접촉하여, 환상적인 사람의 지각처럼 법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라는 것도 남이라는 것도 없는 것은, 타 버리는 일이 없고, 타지 않는 것에는 소멸하는 일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마하 카사바여, 만일 여덟 가지 잘못을 이탈하지 않은 채, 여덟 가지 바른 해탈에 정신을 집중하여, 잘못인 것의 평등성에 의해 바른 것의 평등성으로 들어가며, 한 주먹밥이라도 그것을 모든 중생에게 베풀고, 또 모든 불타와 성자에게 바친 다음, 비로소 자신도 먹는다고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러운 것으로써 먹는 것도 아니고 더러움을 떠나서 먹는 것도 아니며, 그것은 윤회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열반에 들어간 것도 아닌 것처럼 먹는 일입니다. 대덕이여, 당신에게 누군가가 먹을 것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들이 반드시 큰 과보를 얻는 것도 아니고, 작은 과보를 얻는 것도 아니며, 잃는 것도 없지만 훌륭한 사람으로 되는 까닭도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불타의 행리를 따르는 것이기는 해도,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성문의 도에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대덕 마하 카사바여, 이것이 불국토로부터 얻은 밥을 유효하게 먹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가 말했을 때, 세존이시여, 저는 이 설법을 듣고 훌륭하다고 생각되어 모든 보살을 예배했습니다. 재가의 사람으로 있으면서 이같은 변재를 갖추고 있다면, 그 설법을 듣고 누가 무상한 바른 깨달음에 대해 발심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저는 대승이 아닌 성문승이나 독각승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까닭으로 저는 그 고귀한 사람의 병 위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수보리와 음식

 그래서 세존은 장로인 수부티에게 말하였다.

 "수부티여, 비말라키르티의 문병을 가라."

 수부티도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그 고귀한 인물의 문병은 저로서는 갈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바이샬리 성에 있는 비말라키르티의 집으로 탁발하러 간 일이 있습니다. 그때 비말라키르티는 내 바리때를 받아 들고 좋은 음식을 채운 다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수부티여, 만일 먹는 일의 평등성에 의해 일체 존재의 평등성을 알게 되고, 일체 존재의 평등성으로 불타의 본성이 평등함을 깨달을 수 있다면, 비로소 이 드리는 음식을 받아 주시오. 대덕 수부티여, 만일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타파하지 않고 그리고 그것들과 같이 있지 않다면, 만일 그릇된 개아의 관념을 타파하지 않은 채 일행도로 나아간다면, 또 무지와 존재에의 애착을 풀어 버리지 않고도 지혜와 해탈을 낳게 된다면, 또 무간의 죄의 평등성이 당신의 해탈과 평등함을 안다면, 해탈해 있는 것도 아니고 속박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면, 또 4성제를 이해한 것도 아니고 이해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면, 또 과를 얻어 성자가 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범부도 아니고 범부의 법에 배반하지 않는다면, 또 성인도 아니고 성인 아닌 것도, 또 모든 법을 갖추고 있으면서 모든 법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있다면, 이 드리는 음식을 받으시오. 

 만일 스승도 만나지 않고, 법도 듣지 않고, 승단에 봉사하지 않고서도, 저 육사 외도들 대덕의 스승으로 하여, 그들을 좇아 어느 곳이든 이들이 가는 곳에 성자 수부티도 간다고 하면, 이 드리는 음식을 받으시오. 당신은 온갖 악견에 빠져, 두 극단과 중도의 바른 인식을 얻지 못했소. 당신은 여덟 가지 불운한 태어남에 빠져, 행운의 본성을 얻지 못했소. 당신은 번뇌와 같은 것이 되어 청정을 얻지도 못했소. 사람들이 모두 격정을 떠나게 되면 그때 대덕도 격정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베품은 청정이 아니며, 대덕이여, 당신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도 삼악도에 떨어질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마라귀와 함께 있으며, 모든 번뇌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번뇌의 본질이야말로 대덕의 본질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 대해 당신은 해칠 마음을 품고 있소. 당신은 모든 불타를 비방하고, 모든 불법을 나쁘게 말하며, 승단에 대해서도 당신은 믿음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코 열반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상 말한 대로라면, 그때 비로소 이 주는 음식을 받으시오.'

 이같이 그가 말한 것을 듣고,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 대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생각이 나지 않아 시방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바리때를 버려두고 그 집에서 나오려하자, 비말라키르티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수부티여, 내가 말한 말에는 두려워하지 말고 부디 이 바리때를 받으시오. 대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여래가 화작한 것에 의해, 이같은 말이 나오면 두렵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두렵게는 생각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또 말했습니다.

 '대덕 수부티여, 환상처럼 화작된 성질인 것 모두에 대해 두려움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말도 모두 같은 성질인 것이며,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은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 문자는 모두 문자의 기성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해탈은 문자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일체 제법은 문자를 초월한 해탈을 그 성격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말했을 때, 2백 명의 천자가 더러움을 떠나 청정무구한 법안을 얻었습니다. 5백의 천자는 진리에 수순하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저는 또 할말이 없어 그에게 대답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 고귀한 인물의 문병은 갈 수 없습니다."

 

 부루나의 설법

 그래서 세존은 장로인 푸르나 마이트라야니푸트라에게 말하였다.

 "푸르나여, 비말라키르티에게 문병을 가라."

 푸르나도 또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고귀한 인물의 문병을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어느 큰 숲에서 새로 온 비구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는데, 비말라키르티가 거기에 와서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푸르나여, 정신 집중에 들어간 다음 이들 비구의 마음을 관찰하고, 그런 뒤에 설법을 하시오. 보물의 큰 그릇을 채우는 데 썩은 음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 비구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아십시오. 보석인 유리와 돌로 만든 유리를 혼동하지 마시오. 대 푸르나여, 중생의 기근을 관찰하지 않고서, 큰 그릇을 작은 기근의 그릇처럼 만들어 내서는 안 됩니다. 상처가 없는 곳에 상처를 내서는 안 됩니다. 큰길을 걷기를 바라는 사람을 작은 길로 안내해서는 안 됩니다. 큰 바다를 소의 발자국에 부어 넣어서는 안 됩니다. 수미산을 개자 씨앗 속으로 넣어서는 안 됩니다. 태양빛을 반딧불빛으로 바꿔 놓아서는 안 됩니다. 사자후를 여우의 목소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대덕 푸르나여, 이들 비구는 모두 일찍이 대승에 들어갔다가 그 뒤 보리심을 잊은 것뿐입니다. 대덕이여, 그들에게는 성문승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성문승은 바른 것이 되지 못하며, 중생의 기근에 대한 본성을 알게 되면 이들 성문은 소경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때, 비말라키르티는 이들 비구들이 삼매에 들어가 많은 과거의 생을 생각해 내도록 했습니다. 과거에 그들은 5백의 모든 부처를 가까이 모시고 있으면서 선근을 쌓은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또 보리심이 생겨나 그 고귀한 선비의 발에 머리를 대고 예배하며 합장했습니다. 그는 또 그들에 대해 무상의 완전한 깨달음에서 퇴전하지 않게끔 법을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거기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성문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가짐도 소원도 알지 못하고선, 누구에게나 성문 따위는 설법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문은 중생의 근기의 우열에 대해 판단이 설 수가 없고, 아라한으로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여래처럼 항상 마음의 통일을 얻고 있지 못하니까'라고요. 세존이시여, 그런 까닭으로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을 위문할 수 없습니다."

 

 대가전연의 의론

 그래서 세존은 장로인 마하 카티야야나에게 말하였다.

 "카이야야나여, 그대가 비말라키르티의 문병을 가라."

 카티야야나도 또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문병은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세존께서 교설의 요점을 비구들에게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 뒤 하신 말씀을 분명히 하기 위해 제가 무상의 뜻, 고의 뜻, 무아의 뜻, 적정의 뜻은 이러이러하다고 부연해서 설법을 했습니다. 그러자 비말라키르티가 거기에 와서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마하 카이야야나여, 움직임을 함께하는 법, 즉 생을 함께하고 멸을 함께하는 법은 말해서는 안 됩니다. 대덕이여, 전혀 생기지 않고 과거에도 생기지 않고 미래에도 생기지 않으며, 또 없어지지 않고 일찍이 없어지지도 않았고 장래에도 없어지지 않는 것, 이것이 무상의 뜻입니다. 무릇 오온이 공성임을 이해하고, 따라서 고는 생기지 않는다고 이해함이 고의 뜻입니다. 아와 무아는 둘이 아님이 무아의 뜻입니다. 자존재도 없고 타존재도 없는 것, 이것이 공의 뜻입니다. 타는 일도 없고 타지도 않는 것인만큼 적멸하는 일도 없으며 적멸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적멸의 뜻입니다.'

 이같이 말했을 때, 그들 비구들의 마음은 무집착으로 되어 번뇌의 누출에서 해탈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문병을 갈 수가 없습니다.

 

 아나율의 천안

 그래서 세존은 장로인 아니루타에게 말하였다.

 "아니루타여, 그대가 비말라키르티의 문병을 가라."

 아니루타도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문명을 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어느 경행하는 장소에서 경행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슈바부하라고 부르는 범왕이 1만 명의 바라문을 거느리고 그 주위를 떠들썩하게 하면서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내 발에 대고 예배한 다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저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대덕 아니루타여, 세존은 당신을 천안통의 제일인자라고 말씀하시는데, 당신의 천안으로써 보면 어디까지 보게 됩니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나라 삼천대천세계를 손바닥 안의 아밀라 열매 보듯이 하오.'

 그러자 비말라키르티가 거기에 와서 머리를 내 발에 대고 예배한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아니루타의 천안이란 것은 만들어진 성질의 것입니까, 아니면 만들어진 바 없는 것입니까? 만일 만들어진 성질의 것이라면 다른 이교도의 오신통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만들어진 바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무위라는 것이므로 그것에 의해서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덕은 어떻게 해서 보는 것입니까?'

 이 말을 들은 저는 한 마디도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바라문은 이 고귀한 선비가 말하는 것을 듣고 경탄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그에게 예배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천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이겠습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불세존이야말로 천안을 가진 사람입니다. 즉 선정의 경지에 들어가, 있는 그대로 모든 불국토를 볼 수 있고, 그리고 주객이 대립한 두 가지로 분별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때 1만의 바라문 일단은 이 설법을 듣고 무상의 바른 깨달음에 대해 깊은 결의를 가지고 발심했습니다. 그러고는 나와 그 고귀한 선비에게 절을 하고 경의를 표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저는 더 할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 고귀한 선비의 문병을 갈 수 없습니다."

 

 우파리의 계율

 그래서 세존은 장로인 우파리에게 말하였다.

 "우파리여, 네가 리차비의 비말라키르티에게 문병을 가라."

 우파리도 또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은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두 비구가 세존께 죄를 짓고, 세존 대하기를 부끄러워한 나머지 감히 찾아뵙지를 못하고 저에게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우파리여, 우리 두 사람은 죄를 짓고 부끄러워 세존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부디 당신께서 우리 두 사람의 후회하는 의념을 제거시켜 죄로부터 건져 주십시오.'

 그래서 저는 이 두 사람에게 법을 설명했습니다.

 그때 비말라키르티가 와서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우파리여, 당신은 이들 두 비구의 허물을 이 이상 더하거나 더럽게 하지 말고, 그 죄에 대한 뉘우침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덕 우파리여, 죄는 안에도 없고 밖에도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안과 밖 이외에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째서냐 하면, 세존의 말씀에 마음이 더러워짐으로써 중생은 더러워지며, 마음이 깨끗해짐으로써 중생은 깨끗해진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대덕이여, 마음은 안에도 없고 밖에도 없으며, 그 둘 이외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음처럼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와 똑같이 모든 존재도 마찬가지로서, 진여밖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대덕 우파리여, 마음의 본성이란 것도 그 마음의 본성이 일찍이 더러워진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비말라키르티가 말했습니다.

 '대덕 우파리여, 모든 사람의 마음은 더러워지지 않는 것을 본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대덕이여, 분별은 더러운 것이며, 분별이 없고 망상이 없는 것이 마음의 본성입니다. 자아가 있다고 그릇 생각하는 것이 더러운 것이며, 무아인 것이 본성입니다. 대덕 우파리여, 모든 존재는 생겨났다가는 없어져 멈춤이 없고, 환상과도 같고, 구름과도 같으며, 번개와도 같은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다른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한순간도 정지하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꿈과 헛그림자와 같은 것으로 진실이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존재는 물에 비친 달과 거울에 비친 모양과 같은 것으로 마음의 분별에 의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는 사람, 그가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이같이 단련된 사람, 그가 율에 있어서 잘 단련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때 두 비구는 말했습니다.

 '이 주인은 참으로 지혜가 있는 분입니다.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 가운데 제일인자라고 세존께서 인정하신 대덕 우파리도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두 사람을 향해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이 사람을 단순히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웅변을 막을 사람은, 성문이든 보살이든, 여래 이외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혜가 빛남은 그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두 비구는 죄를 후회하는 의념이 제거되고, 그 자리에서 가장 높고 올바른 깨달음에 대해 깊은 결의를 가지고 발심하여, 그 고귀한 선비를 예배하고, '모든 사람들도 이같은 변설을 얻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저는 이 고귀한 선비의 문병을 갈 수 없습니다."

 

 라후라의 출가

 그래서 세존은 장로인 라후라에게 말하였다. 

 "라후라여, 비말라키르티의 병 위문을 가라."

 라후라도 또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을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리차비의 젊은 사람들이 제가 있는 곳으로 많이 모여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라후라여, 당신은 세존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전륜왕으로서의 왕위를 버리고 출가한, 그 공덕이라든가 이익이라든가는 대체 무엇입니까?' 그래서 제가 법이 가르치는 대로 출가의 공덕과 이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비말라키르티가 거기로 와서 제게 예배를 한 다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라후라여, 출가의 공덕과 이익을 당신처럼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출가야말로 공덕도 없고 이익도 없는 것입니다. 대덕이여, 무언가 유위의 것이 일어나는 곳에는, 공덕도 있고 이익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가라는 것은 무위로써 수행하는 것입니다. 무위에는 공덕도 없고 이익도 없습니다. 대덕 라후라여, 출가란 것은 물질적인 형상이 없는 것이며 형상을 떠난 것입니다. 처음이라든가 끝이라든가 하는 두 극한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십이견을 떠나 열반으로 가는 길이며, 지자들이 상찬하는 것이며, 성자들이 채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마귀를 쳐서 이기고 오취로부터 해탈해 있습니다. 다섯 눈을 깨끗이 하고, 다섯 힘을 얻게 하며, 다섯 가지 기능의 근거로 되는 것입니다. 남을 괴롭히는 일이 없고, 악한 법과 한데 섞이지 않는 것입니다. 외부의 이교도를 조복하고, 개념적인 설정을 초월해 있습니다. 애욕의 진흙을 건너가는 다리로서, 애착하는 일이 없고, 내것이라는 생각, 내가 있다는 생각을 떠나 있습니다. 집착이 없고, 혼란이 없고 혼란을 끊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조복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켜 줍니다. 마음의 고요함을 도와 기르는 것으로 모든 점에서 비난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출가라고 불리는 것으로, 무릇 이같이 출가하게 되면 그것이 훌륭한 출가인 것입니다. 젊은이들이여, 이러한 선설의 법으로 그대들도 출가를 하시라. 왜냐하면 불타가 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를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므로, 여가도 있고 성영의 상태를 얻는 것, 즉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들 젊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반문했습니다.

 '가장님이여, 부모의 허락이 없는 한 출가해서는 안 된다고 여래께서 말씀하셨다고 듣고 있습니다만.'

 그에 대해 대답했습니다.

 '젊은이들이여,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에 대해 발심하고, 전심해서 수행을 하시오. 그렇게 하면 그것이야말로 당신들의 출가하는 것이 되고, 구족계를 받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3천 200의 리차비의 젊은 사람들은 가장 높고 바른 완전한 깨달음을 향해 발심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까닭에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을 갈 수 없습니다."

 

 아난과 불타의 병

 그래서 세존은 장로인 아난다에게 말하였다.

 "아난다여, 그대가 비말라키르티의 병 위문을 가라."

 아난다도 또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을 갈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세존의 몸에 병이 있어, 우유가 필요했기 때문에, 저는 바리때를 들고 어느 바라문의 큰 저택 문 앞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비말라키르티가 그곳으로 와서 저에게 절을 한 다음 말했습니다.

 '대덕 아난다여, 어찌하여 아침 일찍 바리때를 들고 이 집 문 앞에 서 있습니까?'

 저는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세존께서 병환이시라 우유가 필요해서 얻으러 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덕 아난다여, 그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대덕이여, 여래의 몸은 금강처럼 견고합니다. 모든 악은 다 끊어 버렸고, 모든 선을 다 모아 가지고 계십니다. 무슨 병이 있겠습니까. 무슨 고통이 있겠습니까. 대덕 아난다여, 세존을 헐뜯는 것 같은 말을 하지 말고, 아무 말 없이 가십시오. 다른 어느 사람에게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큰 위덕이 있는 제천이나 모든 불국토로부터 모여와 있는 보살들이 틀림없이 듣고 말 것입니다. 대덕 아난다여, 전륜왕만 해도 그 작은 선근으로도, 병에 걸리는 일이 없는데, 무량한 선근을 갖추고 있는 세존께서 어떻게 병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대덕이여, 우리들에게 부끄러운 생각을 갖게 하지 말고, 곧 돌아가 주십시오. 다른 이교도, 행자, 유행자, 나형자, 아지비카 등이 틀림없이 듣고 맙니다. 그들에게 아니, 이 사람들 스승은 자기 몸도 구하지 못하면서, 남의 병을 어떻게 건져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대덕이여, 몸을 숨겨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끔 가십시오. 누군가가 듣고 맙니다. 대덕 아난다여, 모든 여래의 몸이란 것은 법신으로서 음식으로 기르는 몸은 아닙니다. 여래에게는 세간을 초월한 몸이 있어, 세간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있습니다. 여래의 몸에는 고통이 없고, 번노의 누출과는 완전히 반대인 것입니다. 여래의 몸은 무위로서 모든 작위를 떠나 있습니다. 대덕이여, 이같은 몸에 병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세존께 실로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존을 가까이 모시고 다녔으면서도, 부처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때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난다여, 가장이 한 말은 바로 그대로이다. 그러나 세존이 오탁의 시절에 이 세상에 나타나 이런저런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중생들을 해탈케 하기 위한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유를 얻어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세존이시여, 비말라키르티의 지혜와 변재는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고귀한 선비의 문병은 갈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문병을 갈 생각이 나지 않는 500명 가량의 성문들은, 자기들이 일찍이 경험한 것을 세존에게 말하고, 비말라키르티와 주고 받은 이야기 전부를 세존에게 말씀드렸다.

 

 미륵보살의 성불 예언 

 그래서 세존은 보살인 마이트레야에게 말하였다.

 "마이트레야여, 그대가 비말라키르티의 병 위문을 가라."

 마이트레야도 또 말했다.

 "세존이시여,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을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도솔천의 천왕과 그 권속들과 함께, 보살대사가 갖는 불퇴전의 지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말라키르티가 와서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마이트레야여, 세존께서 당신에게 이제 한 번 더 태어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거라고 예언하셨다지요? 그런데 어떤 생이라고 예언하신 겁니까? 과거인가, 미래인가, 아니면 현재인가. 만일 과거의 생이라면 그것은 지나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미래라면 현재에까지 미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생은 또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 '비구여, 그대는 한 찰나 속에 나고, 늙고, 죽고, 텅 비고, 또 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생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구극적 결정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생이 아니며, 생이 아닌 것은 예언될 수도 없으며 생이 아니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는 일도 없습니다.

 마이트레야여, 일생보처의 일생이란 여여로서의 생인가, 아니면 여여로서의 멸인가, 어떻게 예언된 것입니까. 하지만, 실은 여여는 무생무멸로 생기는 일도 없고 없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여여란 것은 일체 중생에도 있고, 일체법에도 있고, 모든 성자에게도 갖춰져 있습니다. 바로 그 여여가 마이트레야여, 당신의 여여이기도 합니다. 만일 당신이 그같이 예언되었다고 한다면, 모든 중생도 마찬가지로 예언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여여는 둘이라든가, 각각 다른 것이라고는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이트레야여, 당신이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면 그때에는 모든 중생도 똑같이 깨달음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에 의해 이해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보리이기 때문입니다.

 마이트레야여, 당신이 완전한 열반에 들어갈 때, 그때에는 모든 중생도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생이 완전히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 한 여래도 완전한 열반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 일체 중생이 참으로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는 것, 열반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이트레야여, 장차 나는 열반에 들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그러므로 이들 도솔천 천왕의 권속들을, 당신의 설법으로써 그릇된 방향으로 거짓 선동해서는 안 됩니다. 보리라는 것은 누구든 새삼 그리로 들어갈 수도 없고, 거기서 벗어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이트레야여, 이들 천왕의 권속들로 하여금 보리를 분별하는 생각을 버리게끔 하십시오. 왜냐하면 보리는 몸으로 깨닫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리란 것은 모든 상이 적멸한 것입니다. 인식의 대상으로서 틀리게 설정된 모든 것은 아닙니다. 보리라는 것은 의지작용이 모두 움직이지 않는 것, 모든 견해와 무관계한 것입니다. 보리는 모든 분별과 떨어져 있고, 움직임과 생각과 마음의 동요 등 모든 것과 떨어져 있습니다. 보리는 모든 욕망이 일어나지 않는 것, 모든 사로잡힘과 떠나 무집착인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보리는 법계를 자신의 집으로 하여 머물고 있는 것이며, 진여에 응해 아는 것입니다. 보리는 진실의 극한에 사는 것이며, 뜻도 그 대상인 법도 없으므로 불이이며, 허공과 같이 평등한 것입니다. 보리는 생겨나거나 없어지거나 멈춰 있거나 변용되거나 하지 않으므로 무위인 것입니다. 보리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동과 의욕을 아는 것으로서, 인식의 장소는 아닙니다. 보리는 다음의 생을 이끌어내는 번뇌와 그 습기와 떨어져 있으므로 장소 안에도 방위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리에는 전혀 생기라는 것이 없고, 여여 안에 멈춰 있지도 않습니다. 보리라는 것은 이름뿐인 것으로 그 이름과는 무등한 것입니다. 보리는 취하는 것도 버리는 것도 없으므로 생각하는 물결이 일지 않습니다. 보리에는 혼란이 없고, 본성으로서 청정하며, 빛나는 것으로서 본질적으로 깨끗한 것입니다. 보리에는 인식이란 것이 없고, 전혀 대상을 갖지 않습니다. 보리는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 다양성이 없습니다. 보리는 비유로는 말할 수 없는 무비인 것입니다. 보리는 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미묘라고 말해집니다. 보리는 허공과 같은 성질인 것으로 모든 곳에 편재합니다. 그것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몸은 풀과 나무와 석벽과 도로와 그림자 같은 것이며, 마음은 비물질적인 것, 나타나지 않는 것, 의지할 곳이 없는 것, 표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비말라키르티가 말했을 때 세존이시여, 모임 가운데 있던 200의 제천은, 사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저는 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존이시여,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을 갈 수 없습니다."

 

 광엄과 금강보좌

 그래서 세존은 리차비의 젊은이인 광엄에게 말하였다.

 "광엄이여, 그대가 비말라키르티의 병 위문을 가라."

 광엄도 또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을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바이샬리 큰 성에서 나오는데 마침 성으로 들어오던 비말라키르티와 저는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인사를 하기에 제가, 가장이여, 어디서 오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보리좌에서 왔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보리좌란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거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좋은 집의 아들이여, 보리좌란 것은 작위된 것이 아니므로 직심을 자리로 하는 것입니다. 이 직심으로 행동하므로 이것을 자리로 합니다. 공탁을 더욱 증대시키기 때문에 깊은 마음을 자리로 합니다. 조금도 잘못되는 일이 없으므로 도를 얻고자 하는 보리심을 자리로 합니다. 보답을 바라지 않으므로 보시를 자리로 하고, 소원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지계를 자리로 합니다. 모든 사람에 대해 미운 마음이 없으므로 그것은 인욕을 자리로 하고, 게으르거나 물러섬이 없으니까 정진 노력을 자리로 합니다. 사물에 따라 유효하게 움직이는 마음이므로 그것은 선정을 자리로 하며, 바로 눈 앞에 모든 것을 보기 때문에 반야의 지혜입니다.

 모든 중생에 대해 평등한 마음이므로 자를 자리로 하고, 모든 박해를 참기 때문에 비를 자리로 하며, 중생이 희락을 보고 기뻐하며 바라기 때문에 희가 자리이고, 애착과 미움을 버리고 평등하게 대하니까 사를 자리로 합니다. 여섯 신통을 다 성취하니까 신통을 자리로 하고, 분별이 없으므로 해탈의 자리입니다. 중생을 다 교화하니까 방편을 자리로 하고, 사람 사람을 모두 포섭하므로 사십사의 자리입니다. 들은 바대로 행하니까 다문을 자리로 하고, 이치에 맞는 관찰이므로 마음의 복심을 자리로 합니다. 무명이라는 번뇌의 누출, 내지는 늙음과 죽음의 번뇌의 누출이 없어졌으므로 십이연기의 자리이며, 진실의 있는 그대로를 깨닫는 것이므로 무명번뇌 자리입니다.

 일체 중생은 무자성이므로 일체 중생을 자리로 합니다. 일체법의 공인 것을 깨닫는 것이므로 그것은 일체법을 자리로 하고, 마의 세계에서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므로 항마를 자리로 합니다. 마음이 업에 얽매이지 않고 삼계에서도 삼계, 즉 공이라 가는 바 없기 때문에 삼계를 자리로 하고, 보살의 설법을 근기에 따라 사물을 이롭게 하며,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사자후를 자리로 합니다. 모든 점에서 비난받는 일이 없으므로 그것은 십력, 사무소외, 십팔불공법을 자리로 합니다. 번뇌가 남아 있지 않으므로 삼명을 자리로 하고, 일체지의 지가 완성되어 있으므로 마음의 한 찰나에 모든 것을 남김없이 이해하는 일체법을 자리로 합니다.

 좋은 집 아들이여, 위에 말한 것처럼, 무릇 보살이 바라밀다를 갖추고, 사람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을 갖추고, 바른 법의 획득을 갖추고, 선근을 갖추고 있는 한, 그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보리의 자리에 기인하고, 모든 불법에 기인하여, 불법 속에 있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같이 말하고 있을 때 5백의 천민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고, 저는 또 그것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을 갈 수 없습니다."

 

 지세보살과 마신

 그래서 세존은 보살인 자가틴다라에게 말하였다.

 "자가틴다라여, 그대가 비말라키르티의 병 위문을 가라."

 자가틴다라도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을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런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제 집에 있을 무렵, 마귀인 파피야스가 샤크라로 위장하고 1만 2천의 천녀에게 둘러싸여, 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면서 제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제 발에 머리를 대고 예배한 다음, 모두 함께 저를 향해 한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그를 신들의 왕인 샤크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말했습니다.

 '카우사카여, 잘 오셨습니다. 욕의 모든 기쁨 속에 있어도, 방종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와 생명과 재산 속에 깃들어 있는 견실한 것을 찾아내고, 모든 욕이 무상이라는 것을 거듭 생각해 살피시오.'

 거기서 그가 말했습니다.

 '고귀한 선비여, 바라옵건대 당신의 시중을 들 수 있게끔 이들 1만 2천의 천녀를 받아 주십시오.'

 저는 말했습니다.

 '카우시카여, 사문이며 석가의 아들인 내게, 적당하지 못한 것을 베풀어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 천녀는 내게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곳에 비말라키르티가 찾아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좋은 집의 아들이여, 그를 샤크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마귀 파피야스이며 당신을 속이러 온 것입니다. 샤크라가 아닙니다.'

 거기서 비말라키르티는 그 마귀인 파피야스에게 말했습니다.

 '파피야스여, 이들 천녀는 사문인 석가의 아들에게는 적당치 못하니 내게 달라.'

 그러자 마귀 파피야스는 두려워하여 마음이 언짢아져서 몸을 숨기려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온갖 신통력을 부려 보았으나 숨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공중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마귀 파피야스여, 이들 천녀를 이 고귀한 선비에게 주어라. 그러면 비로소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파피야스는 두려운 나머지, 본의는 아니지만 그 천녀들을 비말라키르티에게 주었습니다.

 비말라키르티는 그들 천녀를 받은 다음, 그녀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마귀 파피야스가 내게 주었으니 무상의 바른 깨달음을 향해 발심하라.'

 그리고 그녀들이 깨닫는 쪽으로 점차 성숙해 가는 데 알맞는 말을 했으므로 그녀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다시 그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이미 발심했으므로, 지금부터는 각자가 즐길 만한 법락이 있다. 오욕락을 기뻐하여 바라서는 안 된다.'

 그녀들이 물었습니다.

 '그 법락을 즐기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법락이란, 불타를 믿는 즐거움, 법을 들으려고 원하는 즐거움, 스님들께 공양드리는 즐거움, 만심 없이 스승을 존경하는 즐거움, 모두 삼계에서 벗어나는 즐거움, 오욕의 대상에 몸을 두지 않는 즐거움, 다섯온을 사형 집행자와 같은 것으로 보는 즐거움, 사대를 독사와 같은 것으로 보는 즐거움, 십이처는 사람이 없는 마을과 같이 텅 비어 있다고 하는 즐거움, 깨달음을 찾는 마음을 지키는 즐거움, 사람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즐거움, 보시로 나눠 주는 즐거움, 계에서 이완이 없는 즐거움, 인내에 있어서 참고 견디며 조련하는 즐거움, 정진에서 선을 완성하는 즐거움, 선정에서 법을 누려 받는 즐거움, 지혜에서 번뇌가 나타나지 않는 즐거움, 깨달음이 큰 것에 대한 즐거움, 마를 제압하는 즐거움, 불국토를 깨끗이 하는 즐거움, 상호를 완성하여 모든 선을 쌓는 즐거움, 깊은 법을 듣고 두려움이 없는 즐거움, 세 가지 해탈문을 숙지하는 즐거움, 열반을 목표로 하는 즐거움, 보리좌를 꾸미는 즐거움, 또 그때가 오지 않으면 열반을 얻지 않는다고 하는 즐거움, 자기와 동류의 사람들을 친하고 가깝게 하는 즐거움, 이류의 사람들에게는 미움과 노여움을 품지 않는 즐거움, 좋은 친구들에게 봉사하는 즐거움, 나쁜 무리들의 비행을 그만두게 하는 즐거움, 법을 원하고 믿어 훌륭한 기쁨을 얻는 즐거움, 방편 가운데 사람들의 마음을 포용하는 즐거움, 깨달음에 대한 적절한 방법을 익혀 방종에 빠지지 않는 즐거움 등 이같은 것을 보살의 법락이라 하는 것이다.'

 그때 마귀 파피야스가 천녀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궁으로 돌아갈 테니 따라오라.'

 그러나 그녀들은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들을 이 가장님에게 주었으므로 지금은 법락을 즐겨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는 오욕락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거기서 마귀 파피야스는 비말라키르티에게 말했습니다.

 '보살대사는 가진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고, 마음에 집착이 없을 것입니다. 부디 이들 천녀를 돌려 주시오.'

 비말라키르티는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돌려 주었다. 파피야스여, 이들을 데리고 가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법에 대한 원을 만족시켜 주도록 하라.'

 그러자 이들 천녀들이 비말라키르티께 절하고 나서 말했습니다. '가장님, 마궁으로 돌아간 다음, 우리들은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

 비말라카르티가 대답했습니다.

 '여러 자매들이여, 무진등이라고 이름붙여진 법문이 있다. 그것을 배워 노력하라. 그것은 무엇인가? 여러 자매들이여, 한 등불에서 백 개, 천 개의 등불이 불을 붙이더라도 그 등불의 밝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한 보살이 백천의 많은 중생들의 마음을 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하고, 그 뜻이 영원히 꺼지지 않고, 설법을 들을 때마다 더욱 선한 법이 자꾸만 드러나게 하는 것, 이것을 일컬어 무진등이라 이름한 법문이다. 그대들이 저 미궁으로 돌아가거든 무량한 천자와 천녀들이 보리의 마음을 발하게끔 하라. 그리하여 그대들은 여래의 은혜를 잘 아는 사람이 되고, 모든 중생을 진실되게 살게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서 천녀들은 비말라키르티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마귀와 함께 돌아갔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비말라키르티의 이같이 뛰어난 신통력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수다타의 법회

 그래서 세존은 장자의 아들 수타다에게 말하였다.

 "좋은 집의 아들이여, 그대가 비말라키르티의 병 위문을 가라."

 수다타도 또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은 갈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아버지 저택에서 저는 큰 잔치를 벌였고, 이로써 모든 사문과 바라문 승려들 그리고 외도의 승려들, 가난한 사람, 고난의 사람, 곤궁한 사람, 걸인 등 물건을 요구하는 사람 모두에게 보시를 행했습니다. 이 큰 잔치는 이레 동안에 걸쳐 치렀고, 그 마지막 날에 비말라키르티가 그 자리에 나타나 제게 말했습니다.

 '장자의 아들이여, 당신이 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잔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법에 의한 잔치를 해야 합니다. 돈에 의한 잔치가 무슨 소용이 있겠소.'

 제가 물었습니다.

 '법에 의한 잔치란 어떻게 보시하는 것입니까?'

 비말라키르티가 대답했습니다.

 '법의 잔치란 것은 언제가 처음이고 언제가 끝이란 것이 없고, 일체 중생을 공양하는 것, 그것이 법의 잔치입니다. 그것은 또 보리의 모습을 가지고 대자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 훌륭한 법으로 인정되어 대비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 모든 사람의 기쁨을 보는 것으로서 대희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 지혜에 속하는 것으로 대사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적정과 조련에 의해 보시 바라밀다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파계한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으로서 실제로 계가 이루어지고, 제법의 무아인 것을 보고 실제로 인 바라밀다가 이루어지고, 깨달음으로 향한 노력에 의해 정진 바라밀다가 이루어지고, 몸과 마음을 함께 이탈함으로써 선정 바라밀다가 이루어지고, 일체지의 지에 의해 지혜 바라밀다가 실제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법회란 것은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는 것으로서, 공성이 실제로 학습되고, 유의를 정화함으로써 무상이 실제로 학습되고, 생각대로 생으로써 무원을 간직하면서도 방편의 힘을 발휘해야 하고, 중생을 제도하면서 사섭법을 행해야 하고, 일체 중생의 종이 되고 제자가 됨으로써 실제로 만심이 없어지고, 핵심이 없는 곳에 핵심을 알게 됨으로써 실제로 만심이 없어지고, 핵심이 없는 곳에 핵심을 알게 됨으로써 실제로 몸과 생명과 재산도 얻게 되고, 육종을 생각하는 육념함으로써 염이 실제로 성립되고, 기뻐하게 될 법에 의해 실제로 곧은 의욕이 있는 사람이 되고, 바르게 노력함으로써 실제로 깨끗한 생활이 전개되고, 믿음과 기쁨에 이바지함으로써 성자에의 봉사가 실제로 성립되고, 출가함으로써 깊은 결의가 실제로 성립되고, 노력에 의해 배운 것에 대한 통효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번뇌가 없는 법을 이해함으로써 실제로 나무 밑에서 참선하는 사람이 되고, 모든 사람을 번뇌로부터 해탈시키는 행에 의해 실제로 요가행의 계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또한 상호를 갖추어 불국토를 청정케 하고, 사람들을 성숙시킴으로써 실제로 복덕이라는 깨달음에의 공덕을 닦고, 일체 중생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적절히 법을 말함으로써 지라는 자재가 성립되고, 일체법에 있어서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는 유일의 이치를 앎으로써 지혜라는 자재가 성립되고, 모든 번뇌, 모든 장애, 모든 사악을 끊음으로써 일체의 선근이라는 자재도 실제로 성립되고, 일체지라는 지를 이해하고, 선을 갖추는 것에 의해 깨달음에의 적절한 수단이 실제로 생기되고 성립되어 있는 것, 이것이 좋은 집의 아들이며, 법에 의한 잔치입니다. 이같은 법의 잔치를 벌인 보살이야말로 참으로 잔치를 행한 사람, 대시주가 되며, 신들에 의해서도 세상 사람에 의해서도 공양받을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비말라키르티가 이상과 같이 법을 설했을 때, 세존이시여, 이 바라문 승려 중 200명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습니다. 저도 또 마음이 깨끗해지며 놀랍고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바라 그 고귀한 선비의 발 밑에 예배하고 값이 백천금 쯤 되는 진주목걸이를 목에서 풀어 바쳤으나 거사는 그것을 기어코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디 이것을 받아 아무고 좋아하는 분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했더니, 비로소 목걸이를 받아 들고, 그것을 절반으로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 한쪽 부분을, 이 잔치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경멸하고 있는, 성 안의 가난하고 천한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또 다른 한쪽은 저 광명 국토의 난승여래에게 바쳤습니다. 그리고 신통력을 가지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 전부에게 양염세계와 그곳에 잇는 난승여래를 보였습니다. 또 사람들은 그 진주목걸이가 난승여래의 머리 위에 갖가지 아름다운 진주목걸이의 누각이 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신변을 나타낸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보시자, 시주인 사람은, 여래가 보시할 대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성 안의 가난하고 천한 사람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여래 복전을 대하듯, 그 보답 같은 것을 기대하는 일 없이, 대비의 마음에서 보시를 행하게 되면, 이를 일컬어 구족법시라고 하며 이 사람이야말로 법의 잔치를 완전한 것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이때 그 성 안의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이 신변을 보고, 또 이 설법을 듣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까닭에 저는 그 고귀한 선비의 병 위문을 갈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그들 보살 대사들은 모두 그 고귀한 선비와 기회 있을 대마다 말을 주고받은 이야기를 일일이 세존께 말하며, 나아가 문병을 가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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