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황유원 - 총칭하는 종소리

 

밀크북_2 세상의 모든 최대화, One color | One Size@1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 황유원 시집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4)[ 양장 ] 예언자, 민음사 일러스트 모비 딕 슬픔은 날개 달린 것:맥스 포터 장편소설, 문학동네

 

 

 빗속에 울리는 종소리

 그것을 우중 행군이라 총칭한다

 모든 것을 총칭하느라 아주 멀리까지 퍼진 종소리가

 좍좍 비를 맞으며

 불완전 군장으로

 판초도 없이 푹

 숙이고 간다

 속옷까지 젖어 버린 종소리

 이 지경까지 헐벗은 행군

 종소리는 좌우로 밀착하고 종소리는 불현듯

 천둥을 함축한다

 구름을 소화한다 번개를 배출한다

 전투기를 잡아먹고 초음속 비행하는 소리를 흉내 내는 구름들

 과거시와 현재시와 미래시를 압축하고 속으로 깜빡깜빡 비상등을 켜 보며

 격추당하는 소리를 흉내 내는 삐뚤빼뚤한 사선들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종 속에는 기합이 모여들지요

 총동원할 것

 물집을 식량을 다양한 군사 지식을

 뭉쳐서 장음이 되는 온갖 단음들을

 이를테면 바다가 넓은 줄 알아 무한정 마셔대는 고래들처럼

 불가능을 진동시키며 오로지 웅웅거림으로써만 기능할 것

 집중된 독재자의 연설

 뻗어 나간다

 마이크 없이

 온몸을 마이크로 쓸 줄 알아서

 퍼붓는 빗속에 플러그를 꼽아 버리며

 종은 종 안의 인간을 여기 다 풀어놓기로 한다

 종소리는

 죽지 않는다 낙오하지 않는다 오직 적멸에 들뿐

 푹 젖은 상하의 탈의하지 않는다

 그 앞에 고개 숙이고 땅바닥에 최대한 가까워져

 절하는 세상 모든 빗소리들

 그 대량의 고개 숙임들 위로 종은 또 한 번 와락 종 속의 내부를 

 쏟아 내고야 만다

 귓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 장착되고

 만장일치로 폭발을 시도하기로

 이제 제발 작작 좀 해라

 세상의 장단에 좀 놀아나면 어때

 해가 좀 뜬다

 계급도 군번도 없다

 빗소리 잦아들어

 이때를 경배하라

 마른 종의 침묵이 귓속 심해로 가라앉는 소리

 속에서 꽉

 벌어진 채 다시는 붙지 않는

 다리처럼 턱관절처럼

 연한 식물의 줄기들 같은 흔들림 속에서

 쥐 죽은 듯 취침할 것

 좌로 취침하든

 우로 취침하든

 아무려면 어때

 그것을 궁극의 잠꼬대라 총칭한다

 이것이 내 몸에서 난 소리라는 사실에 뒤늦게 돌라 뒤틀리며

 그 놀람이 내려친 맑음 속에서

 골 때리도록

 골 때리도록

 이토록 청정한 무량광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너라는 운해에 스며들고 있었다

 운해의 성분들을 뒤엎고 갈아치우며

 도처에서 세워지고 무너져 내리는 음향의 적멸보궁이 되어

 와라

 와서 나의 극광이 되어라

 허공 속으로 쫙

 찢어지는 번개처럼

 한달음에 달려가 두 눈 꽉 감고

 최선의 소리로

 최전선의 소리로

 확! 거기 뛰어들어라 울려 퍼져라

 두 발 쭉 뻗어 버려라 

 가서 너의 극락이 되겠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유원 - 구경거리  (0) 2020.11.21
황유원 - 바라나시 4부작  (0) 2020.11.21
황유원 - 비 맞는 운동장  (0) 2020.11.21
황유원 - 쌓아 올려 본 여름  (0) 2020.11.21
황유원 - 간단한 몇 가지 동작들  (0) 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