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내가 언덕을 오르고 있어서 언덕은 내려갈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 몰래 웃을 수도 없었다. 어디 가서 몰래 웃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언덕을 오르면
언덕은 먼저 가서 언덕이 되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기 싫어서 먼저 안 간 어느 날
언덕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이 캄캄한 적도 있지만 언덕을 보면서 언덕을 오르면
언덕은 어디 안 가고 거기 있었다. 한번 언덕이 되면 언덕은 멈출 수 없다. 가다가 멈춘 언덕이라면 언덕은 다 온 것이라고. 잠깐 딴 생각을 하다가 언덕을 잊어버린 언덕처럼 앉아 있으면
네가 지나갔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승유 - 소설가 (0) | 2021.05.18 |
---|---|
임승유 - 물을 가득 담은 유리그릇 (0) | 2021.05.18 |
임승유 - 단체 사진 (0) | 2021.05.18 |
임승유 - 생활 윤리 (0) | 2021.05.17 |
임승유 - 모텔 (0) | 2021.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