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쪽잠에 빠지기도 했다
소년들이 골목을 뛰어다니고 네가 두 무릎을 끌어안으면 문득 심장이 뛴다는 게 낯설어지지
우리는 바닥에 떨어뜨린 형형색색 알약들, 악보 없는 피아노 연주, 비 온 뒤의 냄새
모두 적고 녹음하고 촬영하고 그리기를 반복한다
개의 이름을 '개'라고 붙인 걸 알게 되면
사람들에게 경멸의 눈빛을 받게 되는 걸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모를 비밀을 공유하면서
사실 나, 어제까지 널 사랑했던 건지도 몰라
서로가 입던 옷을 서로에게 입혀 주고
눈물 모양 귀걸이, 테니스스커트, 니삭스, 너의 단발을 만지면서
네가 잠들 때마다 달이 떠오른다
만국의 언어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있을 거야 그런 언어를 찾으려고 아이들은 제멋대로 세계를 돌아다니겠지 각 나라의 인사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잔뜩 주워 모아서, 안녕, 폼락쿤, 떼아모, 굿바이...... 일기장에 적고 바라보겠지
여러 종의 꽃이 한순간에 피어나고
귓불에 핏방울이 맺힌다
온 바닥에 사탕을 어질러 놓고, 그럼 우린 웃게 될까
아직도 소년들이 뛰고 있다 잠든 너의 실루엣을 바라보다가 눈이 멀어도 괜찮겠지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너를 바라보면
어둠 속에서 너의 얼굴만 영원하게 되고
달은 저물지 않고 사라진다
우리는 우리를 부정하고 있었던 걸까
새벽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심장 소리와 소년들의 뜀박질 소리를 혼동한다
네가 기약 없는 슬픔에 대해 적으면
나는 너의 그 모습을 녹음하고 촬영하고 그리겠지만
우린 우리가 만든 기록물 속에 갇혀 슬픔만 느끼게 될 거야
죽지 않고 죽음에 빠지게 될 거야
마술보다 환각에 가까운 눈물을 기다리는 동안
막다른 길에 도달한 아이들은 자신과 같은 마음의 타인이 없어서
꽃 한 송이씩 꺾을 때마다
안녕, 폼락쿤, 떼아모, 굿바이......
꿈인 줄도 모른 채 죽은 꽃에게 이름을 붙여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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