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포도알처럼 많은 혹을 달고 빈 골목을 달려갔다
일요일엔 길 잃은 개들이 잠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개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다시 잠이 들었다
금요일엔 하늘 가득 모자들이 둥둥 떠다니다가
내 머리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길가의 나무들을 만날 때마다 모자를 하나씩 벗으며 인사했다
안녕, 날씨가 좋군요 이런 날엔 모자가 제격이죠
수요일엔 누군가 나에게 계속해서 물뿌리개로 물을 주었는데
침대보에서 피어난 장미넝쿨의 가시만 더 크고 억세게 자라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지도 잠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빗소리만 들었다
토요일엔 빨랫줄에 젖은 모자들을 널었다
햇빛에 잘 마른 모자들은 가볍게 하늘을 날아가고
나는 여전히 젖은 채로 빨랫줄에 걸려 있었다
일요일 어항 속에 열대어는 없고 온통 헤엄치는 개들뿐이었다
누가 너희를 이곳에 넣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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