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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영 - 해는 중천인데 씻지도 않고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유계영 시집, 문학동네 온갖 것들의 낮:유계영 시집, 민음사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유계영 시집, 현대문학

 

 

 내가 돌아오지 않는군

 벽에 드리운 오후

 

 거위는 자신에게 뒤통수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면서

 뱃속에 돌을 모아 작은 해변이 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먹어야 할 것 외에는 먹지 말아야 할 것

 돌의 뒤통수는 대장공의 망치 속에 웅크리고 있지

 

 해변과 왼손잡이용 식칼의 거리만큼 큰 바위가 될까

 

 꿈속에 잠긴 이마를 오래 누르고 있으려고

 절정을 만들지 않은 자장가

 창틀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흔들고 있는 유령들

 

 살아 있는 척

 

 생일을 따서 만든 비밀번호는 물론이고

 오늘이 오늘인 것

 내가 나인 것까지

 태어난 일과 죽은 일까지 망각하기

 

 뒤통수를 들고 외출한

 내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군

 

 현관으로 입장하지 못하는 슬픔은 창문을 통하지

 슬픔, 운다, 오래오래, 흑흑

 창유리에 파리 한 마리 곤두박질치는 소리

 

 시간은 코앞에서 흔들리는 탐스러운 엉덩이

 올라타고 싶은 순간과 걷어차고 싶은 순간으로

 뒤뚱거린다

 

 돌멩이를 삼키는 거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