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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 돌의 정원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 안희연 시집, 창비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시집, 창비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안희연 시집, 현대문학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서랍의날씨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나를 열고

 

 여긴 더이상 식물이 자랄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소매를 끌며 자꾸만 밖으로 나가자고 합니다

 

 우리는 흰 울타리를 넘어 처음 보는 숲으로 갑니다

 

 보통의

 숲이었는데

 

 나무들이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올려다보면 아주 긴 목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흰 종이 위를 맨발로 걸어가본 적 있니

 앞이 안 보이고 축축한 버섯들이 자랄 거야

 거기 있어? 물으면 거기 없는

 

 여름

 우리는 아름답게 눈이 멀고

 그제야 숲은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서

 눈부신 정원을 꺼내주었던 것입니다

 

 색색의 꽃들 아름다워 손대면

 검게 굳어버리는 곳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멀찌감치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니 거기서 무얼 하고 계세요 왜 그런

 굴러떨어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계세요

 

 무심코 둘러보았는데

 모두들

 자신을 꼭 닮은 돌 하나를

 말없이 닦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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