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과수원집 아들
그에게 스민 과일의 피로 산다
열리다 열리다 지치면 사과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
문득문득 들린다고 했다
나는 못 듣고 그만 듣는다
사과는 새로운 감정이다
집 안 아무 데나 사과의 감정이 있다
내게 할 말도 봄에게 할 말도
그는 사과에게 했다
하얀 목책을 넘어 나는 날마다 사과 바깥으로 나가 놀았다
그가 사과처럼 툭 떨어진 것
그 사과가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
나는 그냥 까치처럼 홀로 앉아 있다
멀리 겨울 싸락눈이 내리고 사과들이 마르고 있다
죽음은 폐광이란 걸 알았다
사과의 비명 따위 들리지 않는 곳
탄소가 쏟아지는 갱도에 깜빡거리는 점멸등처럼
베란다 사과나무가 숨을 쉬었다 안 쉬었다 했다
살아서 나오는 사과는 한 개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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