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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자 - 폐광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최문자 시집, 민음사 파의 목소리:최문자 시집, 문학동네 사과 사이사이 새:최문자 시집, 민음사 최문자 시세계의 지평, 푸른사상

 

 

 남편은 과수원집 아들

 그에게 스민 과일의 피로 산다

 열리다 열리다 지치면 사과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

 문득문득 들린다고 했다

 나는 못 듣고 그만 듣는다

 

 사과는 새로운 감정이다

 집 안 아무 데나 사과의 감정이 있다

 내게 할 말도 봄에게 할 말도

 그는 사과에게 했다

 하얀 목책을 넘어 나는 날마다 사과 바깥으로 나가 놀았다

 

 그가 사과처럼 툭 떨어진 것

 그 사과가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

 나는 그냥 까치처럼 홀로 앉아 있다

 멀리 겨울 싸락눈이 내리고 사과들이 마르고 있다

 

 죽음은 폐광이란 걸 알았다

 사과의 비명 따위 들리지 않는 곳

 탄소가 쏟아지는 갱도에 깜빡거리는 점멸등처럼

 베란다 사과나무가 숨을 쉬었다 안 쉬었다 했다

 

 살아서 나오는 사과는 한 개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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