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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규 - 시계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송종규 시집, 민음사 당신이라는 호수 민음사 녹슨방

 

 

 언젠가 나는 네 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네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네 아버지의 손목을 비틀었고 네 할아버지의 얼굴에 더러운 물을 쏟아부었다 언젠가 나는 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 연애편지를 썼던 듯하다, 분홍 글씨 자욱한 봄날이었다 더러 분홍빛 자욱한 내 안에

 해일이 일기도 했지만

 

 수많은 너와 수많은 아버지와

 수많은 할아버지들로 강을 이룬 마을 어귀에는

 순록의 뿔처럼 당당한

 햇빛 시계가 걸려 있다

 

 그들 중 누군가 슬쩍

 어깨를 스치며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내 뒤통수를 조준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더러는 오토바이에 꽃다발을 매달아 보내거나 손바닥 위에 때 묻은 동전을 던지기도 했을 것이다

 당신이 나에 대해 어떤 확증도 없는 것처럼

 사실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한다

 하모니카 소리나 벼랑, 그 봄날의 바람처럼

 당신은 아마 내 곁을 스쳐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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