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는 네 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네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네 아버지의 손목을 비틀었고 네 할아버지의 얼굴에 더러운 물을 쏟아부었다 언젠가 나는 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 연애편지를 썼던 듯하다, 분홍 글씨 자욱한 봄날이었다 더러 분홍빛 자욱한 내 안에
해일이 일기도 했지만
수많은 너와 수많은 아버지와
수많은 할아버지들로 강을 이룬 마을 어귀에는
순록의 뿔처럼 당당한
햇빛 시계가 걸려 있다
그들 중 누군가 슬쩍
어깨를 스치며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내 뒤통수를 조준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더러는 오토바이에 꽃다발을 매달아 보내거나 손바닥 위에 때 묻은 동전을 던지기도 했을 것이다
당신이 나에 대해 어떤 확증도 없는 것처럼
사실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한다
하모니카 소리나 벼랑, 그 봄날의 바람처럼
당신은 아마 내 곁을 스쳐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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