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림 - 쉬는 방법
쉬는 방법은 간단하다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펼친다 책을 몇 줄 읽다 말고 읽기 싫다고 생각한다
혹은 읽는데 읽는 게 아니게 하면 된다 그러다
오늘의 날씨를 생각한다
날씨가 뭐라고 포기하지 않고
날씨는 생각해 봤자 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생각해 볼 만한 대상이다
풀이 나와야 하나?
그럼 책상 앞에서 풀 생각을 하면 된다 오늘 하루
풀 한 포기 쳐다보지 않았더라도
풀을 공상 속에 심으면 된다
옆에 누군가 앉아 있으면 더 좋다
옆에 누군가 앉아 있는 건 이 공상의 중요 요건이지만
말은 걸지 않고 서로 서로 쉬는 방법을 착실히 따르자
풀 한 포기 열 포기가 되고 열 포기 에워싸고 나무들 자라고 숲이
물론 계속해서 날씨는
공상을 맴돌고 있어야 한다
태양은 날씨 안에 있다
먹구름이 낀 날씨 안에도 물론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있다 한다
계속되는
지루한
이 휴식을 멈추고 싶다 생각하고
그렇다고 비가 내리게 할 수는 없다 오늘의 날씨에 충실해야지
비가 오지 않았는데 비가 왔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왜 풀은 심어도 되는데 비는 오게 할 수 없습니까
비와 태양은 큰 차이이기 때문이다
공상 속에서조차 반력은 있다
당신이 걸어 온 바로 그 길
당신이 본 바로 그 건물
안으로 들어와 당신을 깨우려는
공상의 방해꾼이 꼭 있다
그의 이름은 친구
이제 그만 쉬러 나가자고 말하는 친구로 인해
밖으로 나가 화단을 지나친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담배 한 개비를 피운다
음
친구와 함께
말없이
그곳에 이르게 한 길을 되돌아보자
사람들이 왔다
갔다
분주히 가고 또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