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림 - 해송 숲

사무엘럽 2021. 4. 8. 08:29

 

[민음사]양방향 (김유림 시집), 민음사 세 개 이상의 모형:김유림 시집, 문학과지성사

 

 

 조개 수천 개가 깔린 해변이었다 조개 하나 뒤집으면 빨간 돌, 조개 하나 뒤집으면 또 빨간 그러나 시간의 경과로 저녁을 알리는 빨간 돌, 조개 하나 뒤집으면 그렇게 빨간 돌, 조개 하나 뒤집으면 달리 빨간 돌, 조개 하나 뒤집으면 두 번 다시 빨간 돌, 조개 하나 뒤집으면 잊은 듯이 빨간 돌, 조개 하나 뒤집으면 뒤집어진 그러나 여전히 빨간 돌, 조개 하나를 뒤집으면 익은 돌, 조개 하나를 뒤집으면 이미 익은 빨간 돌이다

 

 태양 민박을 지난다

 아주머니에게 하룻밤에 얼마지요 물었더니 뭐라 뭐라 대답을 한다

 

 어린 개 한 마리가 나를 따라 오길래 잠시 기다려 보라고 했다

 

 조개 수천 개가 깔린 해변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길은 달라지고 있다 해풍에 비틀린 소나무가 여러 그루 모여 작은 숲을 이루는데 해변을 가리기엔 빈약해서 그 너머로 해변이 점점이 보인다 나는 숲을 가로지를지 숲을 우회할지 그도 아니면 뒤로 물러서 이 그림 그대로를 가져갈지 망설인다 태양 민박을 지난다 아주머니에게 하룻밤에 얼마였지요 물으니 뭐라 뭐라 대답을 한다 이어서

 

 물 한 방울이 떨어졌으나 비로 이어지지 않았다

 

 언덕의 불빛들 가까워지고 등대 공원엔 오래된 운동 기구가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다섯 그중 하나가 여전히 쓸 만해서 산책 나온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전부 늙은 사람들이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숲을 본다

 

 경고음과 함께 수 개의 비가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