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박은정 - 녹물의 편애
사무엘럽
2020. 11. 17. 06:18
난청을 가진 아이는 어른이 되자
울 때마다 녹물을 흘리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소리가 녹이 슬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동안
나는 불협의 감정을 사랑하고
나는 병력의 감정을 사랑합니다
정성을 들여 돌아갈 곳 없어
짐승처럼 제 팔을 물어뜯을 때에도
슬픔은 쉽게 편애됩니다
소리의 어디까지 들어가야 음악이 될까요
조금씩 밤을 넘어온 탄식으로
목단꽃 이불이 젖고 있습니다
공명되던 음들이
초록으로 물들 때까지 움츠리는
소리 속의 큰 소리들
나는 무서워서 자꾸 사랑을 합니다
여자가 귀를 두드리면
허공의 낮과 밤이 흩어집니다
검붉은 말들이 울음 없이
벼랑을 내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