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 - 도로

사무엘럽 2021. 4. 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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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눈을 뜬다 착실하게

 악몽을 꾸었다

 

 빈 골목에 실편백나무 한 주를 꽂자

 골목이 편협해진다

 

 내가 협소해 눈을 떠 본다

 

 질주하고 싶어

 등을 떼어 내기 위해

 

 탁 트인 도로를 달리면

 온몸을 이실직고하는 기분이 들 거야

 눈을 아주 크게 뜨면 정면 대신 내 등이 보일 거야

 

 나의 등이 마치 나의 이변인 것처럼

 

 달릴수록 등은 강렬해지므로

 눈을 질끈 뜬다

 

 눈을 아주 크게 뜨면 무엇과도 눈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빨리 달릴수록 나의 등이 나를 바싹 따라잡고

 

 멈추자

 등이 먼저 주저앉고

 나는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