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송승언 - 굴
사무엘럽
2021. 4. 6. 14:11
명자와 나는 같은 병원 앞에 서 있었다 병원 앞 정원에서 햇발 아래서 정원에는 활짝 핀 꽃들도 많고, 명자와 나는 날개 잃은 석상도 보고 죽은 개미떼도 보곤 하였다
명자는 흰옷을 입고 있었고 나는 흰옷을 입고 있지 않았는데 정오의 정원이라 반짝이는 물도 있었다 연못에는 희거나 붉은, 혹은 황색으로 빛나는 큰 잉어 세 마리와 아직 제 빛깔을 모르는 먹색 새끼 잉어 떼, 빛을 어지럽히고 있는데
너는 병원에 있다 나왔구나 나는 이제 병원에 들어갈 거고 아주 나오지 않을 거야, 말했다 나는 그럴 참이었다 병은 없지만 병은 만들면 된다 창문이 있다면 커튼을 치면 되고
명자는 예쁘고 쪼그리고 앉아 꽃잎을 더듬는 손이 계속 떨렸다 너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니, 묻는데 이제는 찾아올 사람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너에게 그늘이 없어서
너는 빛과 같이 걸었다 천사들을 비웃으며
몇 호실이니? 묻는데 대답이 없고 묻는 사람이 없다 정원에는 죽은 개미 떼 주인 잃은 작은 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