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형 - 하얀 장미, 숲

사무엘럽 2021. 4. 5. 14:06

 

숲(ㅅㅜㅍ):김소형 시집, 문학과지성사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아침달

 

 

 아무도 믿지 않겠지

 내가 머리 없이 숲에 있었단 걸

 

 죽음의 별

 그 가시덩굴

 둘러싸인 숲에서

 

 차디찬 땅냄새

 유령 되어 피어오르는 숲에서

 

 하얀 장미 숲에서

 봉오리 맺힌 장미 맨발로 밟으며 춤추었지

 

 밤의 탱고를,

 피의 왈츠를,

 뼈의 살사를,

 

 하얀 장미 머리가

 굴러다니는 숲에서

 

 누구도 알 수 없었겠지

 장미 한 송이

 굵은 목에 꽂고 춤추었단 걸

 

 번쩍이는 빛

 

 숲에 있던 하얀 장미가

 목에 꽂힌 하얀 장미가

 활짝 피던

 그 찰나

 

 땅속에 묻힌

 새끼 여우 튀어나와

 내 머리 같은 장미 물고

 작은 눈 껌뻑였단 걸

 

 꽃잎 깨끗이 발라 물고

 몇 번이고 뒤돌다

 쪼개진 밤

 짤랑거리며 떠났단 걸

 아무도 알지 못할 거야

 

 이렇게 흐릿한 숲밖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숲밖에는

 여전히

 머리 잃고 산다는 걸

 아무도, 아무도 몰랐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