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형 - 사랑, 침실

사무엘럽 2021. 4. 5. 14:03

 

숲(ㅅㅜㅍ):김소형 시집, 문학과지성사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아침달

 

 

 밤, 붉은 여자가 떠났다

 사랑, 침실로

 여자가 창문에 고개

 들이밀고 내 침대에 올라왔지

 사랑, 침실로

 옆에 누워 속삭이며

 죽음의 이불을 덮자

 하이얀 눈 굴리며

 죽음의 이불을 덮자

 

 내가 여자의 손 힘껏 움켜쥐자

 쑥 빠져버린 팔

 가슴에 품고 거리에 나와 소리 질렀지

 이걸 봐! 왼팔과 오른팔이

 부메랑처럼 붙어 있는 붉은 팔,

 던져도 다시 돌아오는 나의 발톱을

 그러나 사람들은 떠났네

 사랑, 침실로

 

 서로의 발 보며 잠들었던 부랑아들

 서로의 몸 깔고 누웠던

 노숙자들, 모두 여자의 허리

 끌어안느라 정신없었지

 여자가 내게 말했다

 그 팔로 베개를 해보는 건 어때?

 낮은 신음으로 자장가

 불러줄게 낭떠러지 같은

 여자의 입맞춤

 밤은 끝나지 않았지 여자는

 목덜미 핥으며 시커먼

 속삭임 멈추지 않고

 

 나흘 밤 되도록 다들

 깨지 않고 나는 홀로

 우두커니 거리에 서서 되돌아오는

 여자의 팔을

 되돌아오는 긴긴 밤을 계속

 계속, 던져야만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