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호 - 망상 해수욕장

사무엘럽 2021. 3. 3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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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의 얼굴에 모래성을 쌓는 해변의 연인. 파도는 전화벨처럼 밀려와 발자국을 밀어냈다. 나는 내 발자국으로부터 구명당하고 싶어 양손을 흔들었다. 파도를 걸어온 우리. 여전히 망망대해의 스티로폼보다 못한 우리. 그는 고무 튜브라서, 나는 불어도 불어도 부풀지 않는 튜브라서 우리는 가라앉지도 못했다.

 

 우린 알록달록한 거대한 우산 아래 누워 햇빛을 피했다. 그가 쓰레기를 모아 기타를 퉁기며 쓰레기만도 못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여전히 주둥이부터 꽂힌 빈 병처럼 그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해변이란 모래알들이 알알이 모여 영원히 하나가 되지 못하는 곳. 손에 손잡고 아이엠그라운드를 외치면서도 이름은 끝까지 모르는 곳. 나는 망상이 신다 버린 슬리퍼 한 짝과 다정히 걸었다. 방파제 우뚝 솟은 자리부터 모래가 한 움큼 씹히는 비닐 돗자리까지 서로를 나누어 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