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호 - 경진이네(-거미집)

사무엘럽 2021. 3. 30. 07:25

 

캣콜링:이소호 시집, 민음사 이노플리아 어느 푸른 저녁 젊은시인 88트리뷰트 시집, One color | One Size@1 나의 생활 건강, 자음과모음, 9788954446891, 김복희,유계영,김유림,이소호,손유미,강혜빈,박세미...

 

 

 엄마는 다리를 혐오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우리를

 

 언제나 비좁은 우리의 요람

 밤마다 침대에는 온 가족의 다리가 뒤엉켰다

 이 이는 사 이 사 팔

 시팔

 그날, 엄마가 낳은 1989개의 동생

 

 햇빛이 사라지면

 거미는 줄을 타고 올라간다

 

 가진 게 다리뿐인 우리는 살아야 했다

 배고플 때마다 이불 속에서 똥구멍을 조이는 연습을 했다

 한 호흡에 한 번씩 조여지는 똥구멍, 수축하는 질

 

 불행히도 엄마의 자궁은 1989개의 동생을 낳은 후로 늙고 닳았다

 젖을 빠는 대신 우리는 자궁에 인슐린을 꽂고 매일매일 번갈아 가며 엄마 다리 사이에 사정을 했다

 그때마다 개미가 들끓었다

 

 잘 들어 엄마

 엄마는 이제 여자도 뭣도 아냐

 내가 이렇게 엄마 다리 사이를 핥아도 웃지를 않잖아

 봐 봐

 이렇게 손가락 세 개를 꽂아도 느낄 줄 몰라 엄마는

 

 나는 문을 꼭 닫았다

 

 천구백팔십구 천구백팔십팔 천구백팔십칠 천구백팔십육 천구백팔십오 천구백팔십사 천구백팔십삼 천구백, 천구백, 천구백

 

 백

 ......백 ......빽

 

 가진 게 다리뿐인 나는

 살아야 했다

 

 엄마를 향해 사정을 했다 다리 사이로 개미들은 끓고, 턱을 벌리고 엄마의 축 처진 살을 꼬집었다

 울었다 엄마는

 영등포 로터리에서 핑크색 유두를 잃어버린 소녀처럼 똥파리가 들끓는 1989명의 동생을 뜯어 먹으며

 

 비가 오고 줄은 끊어졌다

 거미는 줄을 타고 내려간다

 

 하얀 천과 삼베 탄수화물과 초콜릿 구더기와 거머리 그리고 씨 다른 아빠, 아빠, 아빠

 

 나는 이미 죽음의 추상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제

 가족을 말하지 않고 나를 말하는 방법은

 핑계뿐이다

 

 "엄마는 늘 내게 욕을 했어요

 애미 잡아먹는 거미 같은 년이라고"

 

 햇빛은 사라지고 나는

 다리를 모두 벌린 채 다른 가지에 집을 지었다

 빗방울에도 쉽게 부서지는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