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윤의섭 - 도착 혹은 도착
사무엘럽
2021. 3. 30. 07:03
이 길로 고래가 지나갔다 안쪽으로 휜 가로수들
곧장 걸으면 다다른다고 했다
담장에 그려진 벽화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입 모양에도 솔깃하여
어느 문설주에 걸린 풍경 부르는 소리에도 혹하여
가다 보면 아까 들어선 골목 봄꽃 피었던 화단에 국화가 담겨 있다
너무 늦었거나 너무 일렀는지 모른다 담장을 돌아서면
커피 향 그윽한 카페가 수줍은 듯 앉아 있다
고래가 묵어 간 해안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수천의 사계가 한꺼번에 흐르고 있거나 달이 묻혀 있을 것이다
이 길을 찾아 나서려면 알고 있는 길을 모두 버려야 한다
도착은 결코 돌아서지 못하는 중독
수없이 가 본 적 있어도 계속해서 가야만 하는 불치
섬이나 국경이나
수목 한계선을 넘어선 철새들이 다시 수목 한계선을 향해 날아야 하듯
너에게 무수히 도착했어도 새삼 도착해야 했다
길의 끄트머리에서 또 다른 길을 맞닥뜨리는 절망이라도 만나기 위하여
좌표를 잃고 어느새 은하계의 가장자리를 맴돌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