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윤의섭 - 필담
사무엘럽
2021. 3. 29. 10:51
그제야 완성된 문장인 듯 목련이 피었을 때
비가 내렸다 이날 목련은 가장 위험한 서술어였다
떨어지는 꽃잎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침묵은
스스로 초대한 종말 이후에 쓰이는 은유
화답을 요구하는 죽음이라는 진공
봄나무를 따라 한 줄 바람이 필적을 남기면 지상엔 꽃 무덤의 비명이 새겨졌다
누군가 우산을 펼치자 때늦은 눈이 내렸고
그것은 적절하게 고른 낱말이라고 할 수 없었다
계절은 이어졌다 대답을 들으려면 대답을 끝내야 했던 것처럼
봄의 종족들은 짧은 말줄임표를 남긴 채 사라졌지만
당신은 아직도 말이 없다 노을이 묻힌 자리에 몇 번의 밤이 젖어 들도록
말이 없으므로 나는 영원의 말을 늘어놓는다 공원엔 이국의 언어 같은 꽃들이 새로 피어났다
달빛이 쓰인 뒤에 태양이, 열매가 맺힌 뒤에 겨울이, 사람이 죽은 뒤에 천국이
모든 회답은 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이 증거를
당신은 전면 폐기 중이며
끝내 나는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긴 후일담일 것이다
제 꼬리를 삼키며 간신히 연명하는 쓸쓸한 문장 그 무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