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윤의섭 - 스산
사무엘럽
2021. 3. 29. 06:22
몰락은 모두 서사적인데 나는 그런 예에 속해 있다
사태를 파악할 틈도 없이 절정에 오른
단풍, 고도의 새, 노을 따위가 동류항에 묶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나는 시계를 믿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의 내일이 다가오고 있는 이 시계를
아무래도 몰락은 일회성이어야 했다
하루는 우수수 떨어진 국화잎을 보다 떨어져서도 가지런히 생전의 꽃송이를 따라 원을 그린
섬뜩한 미련을 보다
한없이 스산해지는 것이었다 죽은 뒤에도 남은 기억이란
다만 몰락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는 있다는 것인데 지옥이 최후의 단위라면
언제 어디서부터라는 신의 좌표를 찾아 헤맬 수밖에
아프라면 아프지요 곧 끝나 버릴 일은 대개 극단으로 치닫지요
붕괴 중인 가을의 노란 발음 나는 그런 예의 일종이다
지평에 닿는 모든 길이 좁아지는 것처럼 나는 누군가에게는 소실점이며
끝장부터 거꾸로 읽어야 하는 책이며
몰락은 모두 수직적인데 낙엽도 하관도 유성도 사라져
사라져 가고 몰락과 소멸 사이는 스산하다
그나마 감정적으로 인간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