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섭 - 카드

사무엘럽 2021. 3. 29. 06:14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 민음사 묵시록:윤의섭 시집, 민음사 마계, 민음사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 현대시학사, 9791186557853, 윤의섭 저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문학과지성사

 

 

 이 몇 장의 그림 속에 일생의 전모가 들어 있다

 그림을 고른 건 나라고 책임을 전가해도

 다가오지 않은 날들의 풍경이 고대부터 그려졌다는 거

 

 조금 무서워요

 

 아까부터 들려오는 음악은 사계였다

 가을쯤에서 무너질 수 있다고 낙엽 같은 카드를 읽는다

 

 떠나보낼 수 있다는 예언

 생기지도 않은 일을 부정하는 건 생겼던 일을 부정하는 것이고

 

 창밖엔 장대비였다 빗줄기로 지워진 길에 물길이 생기고 다시 지워지고 다시 그려지는 미래라면 내가 지워 버린 무수한 길은 숙명이며 숙명이 아닌 일방 통로

 

 그날

 새소리가 들리면 좋겠다 싶었는데 새소리가 들려왔다

 산길이었고 너는 언제부터 걷고 있었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같이 산을 오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만 울어도 좋겠다 싶었는데 새소리는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