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은 - 마지막 영화관
연기하지 마 계속 연기하다 보면 너는 네가 연기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되고 말 거야
어느 코미디 배우는 억울한 표정과 무표정이 구별되지 않고
관객은 꽃잎을 하나둘씩 뜯으며 질문을 하죠
당신은 언제부터 그 사람이었어요
희생양이 아니라 악역이겠지
욥의 서사를 연출하는 감독들이 너무 많고
곧 그림자가 관객의 얼굴을 다 덮을 거예요 졸지 말아요 가면이 흘러내릴 거예요 속죄하는 양초처럼
무거운 무대 조명 아래 서 있지 말아요 앉아 있지도 말아요 의자 다리는 신뢰할 수 없어요
어느 실험 영화 감독과 당신이 닮은 점은
사치스러운 생활과 어눌한 말투밖에 없는 것 같은데
공장 사람들은 그의 불건강한 인스턴트 식단을 팝이라고 부르고 환호했죠
당신은 매일같이
생일 파티 풍선의 앙다문 입이 되어 행복한 척을,
피아니스트가 미치기 직전 작곡한 생애 가장 쾌활한 곡으로
뮤직 박스에서 영원히 돌고 있는 발레리나, 그녀의 눈 감은 미소를 따라하죠
비극적으로 사랑받는 척을,
시든 꽃에 대한 고의적인 몰이해와 동거를
흑백 공포 영화의 헤드라이트 불빛 속 빗줄기, 그 속에서 키스를
감상적인 총성, 재즈 카페의 먼지 냄새, 브루클린의 쓰레기 냄새, 핵 폐기장의 고장 난 엔진 소리
카메라에 기대어 잊어버린 척을,
아이스박스 안에 박제된 고고학자의 기억 상실
아몬드나무를 그리다가 지하생활자가 되어버린 예술가들의 고전적인 병명
당신은 비유인 적 없었던 신scene들 속에서
행복한 척을, 사랑받는 척을, 잊어버린 척을
시나리오의 가장 지루한 오십 페이지에 대고 헛기침을 하죠 매일같이
연기를 하고 있어 너는 아프고 치열했던 적이 없는 바로 그 사람이 되어가고 기꺼이 그 사람,
그 사람이 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