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 - 이방의 사람

사무엘럽 2020. 11. 16. 03:23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박은정 시집, 문학동네 밤과 꿈의 뉘앙스:박은정 시집, 민음사 [도마뱀출판사]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 - 문예단행본 도마뱀, 도마뱀출판사

 

 

 갈대숲의 소음과

 낮잠을 자는 연인의 긴 다리

 작은 기분을 사랑했지

 

 절반의 나무가 출렁이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냄새가

 숲을 물들이면

 

 우리는 동시에 사라질

 양극의 망명지를 꿈꾸었을까

 

 난간을 잃은 사람들이

 손을 두고 떠나기 시작한다

 

 뱀에게 영혼을 내주고

 사랑을 배회하던 자들

 

 차가운 네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신발을 벗고

 발이 많은 새를

 손바닥에 그리던 연인들

 

 캄캄해지는 사람, 피가 묽어서

 마음이 둘로 쪼개지는 사람들이

 이상한 얼굴로 웃는다

 

 이 착시의 끝까지 가면

 꿈의 종착점을 보게 될까

 

 밤새 문을 두드렸지만

 누구도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