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기성 - 천호동
사무엘럽
2021. 3. 7. 02:53
네가 빨간 얼굴로
울면서 태어났다는 걸 기억할까
너를 감은 하얀 천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너의 몸이 따뜻했다는 걸
영문도 모르는 배꼽을 줄줄 흘리면서
작은 손과 발로 헤엄치듯
공기 속에서 울었다는 걸 알까
파란 모래처럼 울었다는 걸
천호동을 알까
네가 어린 동생처럼 작았고
종일 까만 눈으로 낡은 벽지를 뚫어지게 보았다는 걸
흰 입술로 텅 빈 말을 중얼거렸다는 걸 기억할까
네가 영원히 자라지 못했다는 걸
세상이 검고 조용하다는 걸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외투를 네가
입고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