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김건영 - 루미놀
사무엘럽
2021. 2. 25. 08:18
한 번도 피를 흘리지 않은 사람의 피는 푸른색이래 처음으로 피를 흘린 순간 공기에 닿아 모든 피가 붉어지는 거래 살아 있는 것은 영영 혼자서 떠도는 거야 피가 그러하니까 창백한 표정을 보면 푸른 물이 생각난다 깊은 물을 떠다 놓으면 투명해지는 것이 표정과 닮았다 격렬하게 움직이던 표정을 그려 놓으면 영원히 잠잠해지려는 수면이 된다 혼자 바다에 있을 때면 바다 깊은 곳에 빛이 보인다더군 걸어도 걸어도 한밤중에 보이는 것은 빛뿐이고 어둠은 보이지 않는다 한낮에도 사람은 죽어서 사라지고 노을이 보인다 보이는 것은 빛뿐이다 어린 시절 내가 부러뜨린 가지에서 얼마나 많은 새가 길을 잃었을까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믿어지던 날 물가에 서서 물로 걸어 들어가지 않는 나무들처럼 나는 마음속에서 여럿을 죽였다 그때의 노을에 이름을 붙여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