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호 - 도래할 生

사무엘럽 2021. 2. 13. 05:41

 

천문, 창비 저녁의 기원:조연호 시집, 최측의농간 유고:조연호 시집, 문학동네 암흑향, 민음사

 

 

 지금은 월식의 숲이라는 고요한 전해질로만

 점자를 피부로 옮기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라는 모든 선생의 통일성 혹은

 일단은 악천후가 되어가고 있는 빈방. 폭우처럼

 불능은 늘 평화로운 쪽에서 불어온다

 

 잠두콩의 꼬투리가 멋져지는 여름이면

 아버지와 그의 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장난을 하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에 잔디밭을 기르고

 일문일답으로 각질을 깎고

 너도 나에겐 이마 위의 꿰맨 자국처럼 희미해지겠지요

 

 미의식 따윈 여전히 문고리가 추구하는 착잡한 모습이었다

 

 [글을 지우고 그 자신의 교과서가 되어

 시는 죽는 사람과 그의 세계를 이토록 괴롭혔으니]

 그는 많은 밤과 대화를 나눴고 이때 이미 첫 부인을 잃었다고 여겼다

 그녀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어버이의 옷에 태양이 달라붙는 사고로 죽는 것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연하에서 다시 미아가 되겠지만

 떠나온 바다는 아름다운 바다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결혼비행인 듯 꽁무니로 쑤신 듯

 잘 가라는 말은 우리의 머리에 수직선을 그었다

 하지만 나는 나 이외로 항문을 대할 수 있을까?

 또 한 무리의 흥분하는 그림을 그리며

 

 친구를 하녀와 같아질 때까지 씻긴다

 모두들 왠지 사막의 모래바람을 보고 온 눈알들이로군요

 부근이나 근처가 되겠지 하지만 그것도 보관에 대한 애정이겠지

 나는 살색으로 뒤덮인 나의 마음을 자아로 바꿀 뜻은 결코 없다

 

 서면어들은 '별말씀을요' '친애하는'이라는 말을 가르친다

 구름은 '발이 짓무르고 있는'으로 음역되어야 한다고 결정한다

 모아둔 추억들이 징그러워 만지지도 못하는 애들과 함께

 얼굴을 묶는 데 쓰는 시침핀을 당신의 친애에 찌르고

 어버이가 되어본다

 

 당신이 데려온 당신은

 아직도 그 세계를 배로 기어다니는

 다리 없는 나를 잊지 않는다

 또 한 무리의 흥분하는 그림을 지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