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양안다 - 예지력
사무엘럽
2021. 2. 7. 06:20
움직이면 안 된다 나무의 옷을 입었으니까
거리의 가로수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흔들리는데
왕의 옷을 입은 배우는 마지막에 나와 인사를 하고 관객들은 박수를 강요받는다 박수를 치는 게, 손바닥을 마주치는 게 의미가 있는 걸까 관객이 나가면 하나의 세계가 허물어질 텐데 우리는 허물어지는 일을 축하받았다
극장을 나가며 관객들은 관객의 옷을 벗는다 나는 나무의 옷, 너는 왕의 옷, 너는 광대의 옷을 벗으며. 옷을 버리면 다른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게 될 텐데
옷의 세계에서 너는 웃음이 헤픈 애였는데 지금은 통 웃질 않는구나 머저리같이 떠들던 애도 어딘지 슬퍼 보여, 나는 너희 때문에 우울해진다
지금 너희의 역할은 웃지 않는 것 말을 줄이고 슬픈 표정을 잘 지어 보이는 것, 나는 이 세계의 너희를 그렇게 이해했다 나의 역할은 너희들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일,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나도 모르게 너희를 옷의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객석을 쳐다보면 안 된다 그것은 내가 맡은 역할이 아니었다 막이 내린 지 오래인데 아직도 누군가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