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강성은 - 서른
사무엘럽
2021. 2. 3. 01:32
책을 쌓아놓고 불살랐는데
재가 되지 않았다
하늘에는 불타는 태양이 세 개
뜨거워서 사람들은 모두 검게 변했네
푸르스름한 저녁이 와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네
도시의 창문들은 한없이 투명하고 맑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림자로 깨어났다
바람 부는 밤이면 낱낱이 흩어져
한 장씩 모아야 했지만
사라진 19페이지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겨울이 와도 불타는 태양은 세 개
나는 그림자로 19페이지를 잃은 채로
냄새나는 청춘의 하류를 통과했다
때로는 낯선 페이지가 흘러들어
달콤한 노래를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귓속에서 이어폰을 빼면
아무도 내게 말을 건네지 않고
다시 월요일은 시작되었다
이야기가 또다른 이야기를 지어내느라
마지막 페이지를 덮어도
책들은 쉽게 사라지려 하지 않았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냄새가 피어올랐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