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은 - 아름다운 계단

사무엘럽 2021. 2. 2. 18:35

 

창비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 강성은 시집 (창비시선 303), 단품 단지 조금 이상한:강성은 시집, 문학과지성사 Lo-fi(로파이):강성은 시집, 문학과지성사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 강성은 시집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1)[ 양장 ]

 

 

 다리를 벌리고 앉은 여자 아래

 졸고 있는 죽은 고양이 옆에

 남자의 펄럭이는 신문 속에

 펼쳐진 해변 위에

 파란 태양 너머

 일요일의 장례식에

 진혼곡을 부르는 수녀의 구두 사이로

 달려가는 쥐를 탄

 우울한 구름의 손목에서 흐르는

 핏방울이 떨어져내린

 시인의 안경이 바라보는

 불타오르는 문장들이 잠든

 한줌 재가 뿌려진

 창밖의 검은 밤 속

 흘러가는 기차를 탄

 사내의 담배연기를 따라

 붉은 달이 떠 있는

 검은 딸기밭 아래

 곱게 화장한 미친 여자 뱃속에

 숨겨진 계단 사이로

 길을 잃은 아이가

 계단을 펼쳤다 접으며 아코디언을 켜고

 계단은 사람들의 귓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밀려나가고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로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계단은 점점 더 느려져

 잠이 든 채 연주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