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은 - 스물

사무엘럽 2021. 2. 2. 16:11

 

창비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 강성은 시집 (창비시선 303), 단품 단지 조금 이상한:강성은 시집, 문학과지성사 Lo-fi(로파이):강성은 시집, 문학과지성사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 강성은 시집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1)[ 양장 ]

 

 

 나는 벌거벗고도 단추 채우는 방법을 알아요

 숫자는 몰라도 시계는 스무 개가 넘어요

 일요일엔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탔어요

 이런, 풀밭에서 느릿느릿 사전이나 씹어먹을 작자 같으니

 나는 자전거를 걷어찼고 자전거는 달렸어요

 달리기는 자전거와 나의 슬픈 식사

 우리는 삐뚤삐뚤 주위를 맴돌다

 아무도 없는 그곳을 빠져나왔어요

 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투명인간이 되는 법을 알아요

 비가 올 때마다 젖지만 우산은 스무 개가 넘어요

 오늘밤 달은 제 몸을 반이나 먹어치웠어요

 달을 너무 오래 보면 미쳐버린다고 말해준 엄마

 검은 옷장 속에서 지나온 계절들을 다림질하고 있겠죠

 내가 내 몸을 반쯤 먹어치울 동안

 문 열면 봄인 어느 저녁이 올 때까지

 나는 나를 찌르고도 피 흘리지 않는 법을 알아요

 어제도 시간은 하수구로 흘렀는데

 햇살 아래 떠다니는 파도는 스무 개가 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