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강성은 - 고딕시대와 낭만주의자들
사무엘럽
2021. 2. 2. 12:50
뾰족한 첨탑 위에 갇힌 누군가 구름에 편지를 써요
그럴 때 구름은 검은 빗방울을 뚝뚝 떨어뜨리지요
구름의 얼룩진 편지를 읽는 어떤 이들은
울음을 멈추고 검은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도시엔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녹색의 박쥐떼가 공중을 날아다닙니다
창백한 입술을 잃은 자들은
곧 두 손과 머리털을 잃고 두 눈알과 심장을 잃었지요
점점 희미해져 우리는 우리를 잃었지요
당신과 나의 비밀 이야기는 입속에서 입속으로
공기와 밤의 중얼거림을 통과하고
얼룩진 편지는 얼룩고양이가 물고 밤의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우리는 내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지만
내일의 악몽을 점칠 수는 없었어요
빗방울은 때로 격렬하게 내립니다
한 방울 뒤에는 수천만 우주의 모든 물방울들이
뾰족하고 오래된 첨탑 위의 편지는
전해오는 이야기 속에서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갑니다
우리는 첨탑 위로 답장을 보내는 법을 모르고
얼음이 어는 순간과 얼음이 녹는 순간 슬픔의 음역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