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 - 개미집

사무엘럽 2021. 2. 1. 01:55

 

웅진북센 아무는 밤 259 민음의시, One color | One Size@1 오빠생각(일반판):김안 시집, 문학동네

 

 

 어릴 적

 죽은 제 식구를 자르고 갈라 이고 가는

 개미를 본 적 있습니다.

 개미의 머리를 이고 가던 개미는 울고 있었습니까.

 땅을 파보니 여전히 개미는 쏟아지는데,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시시때때로 떠야 하고 져야 하는 태양은

 이 역겨운 놀이를 언제쯤 끝낼까요.

 태양을 피해

 불에 타 무너지고 갈라진 건물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개미떼는

 나처럼 영영 나오지 않을 심산인가 봅니다.

 그들에게도

 낮은 감옥이고 밤은 불법인가요.

 하지만 이 말은 순례자의 비겁한 욕망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서울이라는 거대한 개미집에는 문이 없으니

 차라리

 서로의 얼굴을 잊기 위해 불을 끄는 못생긴 연인처럼,

 그들이 나누는 전희처럼, 섹스처럼

 내 눈을 먹어주십시오.

 서로 다른 진실이 기획되어 우리의 기억을 잡아먹듯,

 기억이 밥이 되어 엉덩이로 쏟아지듯,

 나는 모든 진실을 향해 눈을 감고 코를 막을 뿐입니다.

 마침내 그들처럼 함정에나 걸리면 되려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밤

 행간이 죽은 자들이 되돌아오는 길이라도 되면 좋겠습니다.

 잠든 애인의

 벌거벗은 등 위를 기어오르는 개미를 눌러 죽이는 이 밤은

 왜 이리 친밀합니까.

 애인의 친밀한 등을 파고들어갑니다.

 함정입니까 그 속은,

 밤은 거대한 개미 머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