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김안 - 연흔
사무엘럽
2021. 1. 30. 07:08
당신은 내 입 속에서 벌레를 꺼내
하나하나 눌러 죽였네.
방바닥 위에 납작하게 붙어버린 벌레들을 모으다 보니
어느새 붉은 목단 지고 바람은 두꺼워졌네.
이제는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이 모여
방바닥, 제 스스로 한 권의 책이 되었을 때,
당신의 손가락 끝에서 검은 피가 흘러 스며들었네.
기억의 난폭한 의지였네.
그 위에 누우면 내 녹슨 늑골 위로 두터운 투명이 쌓였네.
살아야지, 숨 쉬는 방법을 기억해야지,
검은 피 떨어지는 책을 읽네.
기억이 모여 들끓고 있네.
책 속에 쌓여 있던 모든 문장들이 날아오르던 순간이 있었네.
숨이 차오르다가 풀썩 주저앉던 순간이 있었네.
당신과 당신의 피가 발밑으로 흘러들어 습곡이 되던 바다도 있었네.
바람의 두께를 이기지 못하고 파랑이 일어
모든 기억을 덮으면
내 뼈와 관절들
당신의 피와 비명이 채 가시지 않은 양피지 속으로 새겨졌네.
그 위로 쌓이는 두터운 투명들.
눈을 뜨면,
이 투명은 누구의 눈물을 닮았을까?
누구의 지친 날개 아래일까?
그 눈물로 날개의 무늬를 받아 적네.
그 위로 붉은 목단
쌓이고 쌓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