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 - 연흔

사무엘럽 2021. 1. 30. 07:08

 

웅진북센 아무는 밤 259 민음의시, One color | One Size@1 오빠생각(일반판):김안 시집, 문학동네

 

 

 당신은 내 입 속에서 벌레를 꺼내

 하나하나 눌러 죽였네.

 방바닥 위에 납작하게 붙어버린 벌레들을 모으다 보니

 어느새 붉은 목단 지고 바람은 두꺼워졌네.

 이제는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이 모여

 방바닥, 제 스스로 한 권의 책이 되었을 때,

 당신의 손가락 끝에서 검은 피가 흘러 스며들었네.

 기억의 난폭한 의지였네.

 그 위에 누우면 내 녹슨 늑골 위로 두터운 투명이 쌓였네.

 살아야지, 숨 쉬는 방법을 기억해야지,

 검은 피 떨어지는 책을 읽네.

 기억이 모여 들끓고 있네.

 책 속에 쌓여 있던 모든 문장들이 날아오르던 순간이 있었네.

 숨이 차오르다가 풀썩 주저앉던 순간이 있었네.

 당신과 당신의 피가 발밑으로 흘러들어 습곡이 되던 바다도 있었네.

 바람의 두께를 이기지 못하고 파랑이 일어

 모든 기억을 덮으면

 내 뼈와 관절들

 당신의 피와 비명이 채 가시지 않은 양피지 속으로 새겨졌네.

 그 위로 쌓이는 두터운 투명들.

 눈을 뜨면,

 이 투명은 누구의 눈물을 닮았을까?

 누구의 지친 날개 아래일까?

 그 눈물로 날개의 무늬를 받아 적네.

 그 위로 붉은 목단

 쌓이고 쌓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