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김안 - 두려움의 방
사무엘럽
2021. 1. 28. 22:54
그 밤을 끝내기 위해 재앙을 빚는다.
밤의 은밀한 색깔을 핥는다.
이제 보이는 모든 것이 나의 소유다.
혁명가도, 학자도, 독재자도, 못 돼먹은 애인도
이곳엔 가득하다.
마음의 꼬리를 자르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밤의 색을 머금은 채, 말을 멈춘다.
말이 멈추는 자리에서 재앙은 태어난다.
싱싱한 재앙을 머금고 측백나무 뾰족해진다.
불안한 천사는 어디에서 날고 있을까?
나는 밤의 껍질을 찢는다.
밤이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사람의 육체에서 물이 고이는 곳,
그 모든 밤이 그곳에 모여 있다.
나는 이것과 똑같은 주머니였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모든 물이 빠져나간 죽은 고양이의 배 속에서
말라 죽은 구더기들처럼
밤의 은밀한 색깔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나는 나의 두려움을 상상한다.
당신과 독재자와 늙은 아버지의 두려움을 상상한다.
두려움과 두려움이 만든 반복과 순환의 재앙을,
당신의 유령이 나의 멱살을 잡을 때까지 상상하며
밤의 주머니가 된다.
주머니 속 모든 물을 받아먹으며
측백나무 나날이 뾰족해진다.
불안한 천사는 어디에서 날고 있을까?
모두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천사는 더 투명해진다.
그리고
내 모든 손가락들이 부러진다.
아무것도 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