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김안 - 이후의 방
사무엘럽
2021. 1. 28. 22:45
이 방의 익숙함을 키워야지
당신이 돌이킬 수 있도록
베란다 한 귀퉁이에 버려둔 깨진 화분에서 이름 없는 잡초들이 올라오고
줄기와 줄기 사이 거미가 희끄무레한 집을 짓고
당신은
여기로 올 테지,
이 방이 희미해져가기 전에
이 방과 함께 숨 쉬던 살들과 뼈의 붉은 비밀들이
당신의 부재와 함께 달아나기 전에
당신이 보낸 작은 벌레들이라도 거미의 집을 찢고 들어올 테지
그러니
날 이 방의 귀퉁이들에 비끄러매야지
컵 속에 담긴 우유가 단단해져가듯
지나치게 선하던 한 친구의 흰자위에 검은 점들이 박히듯
손톱 끝으로
사라져가는 벽을 긁으며
사라져가는 기둥을 세우며
이 방을 성난 늙은 광장의 시간들로부터 지켜내야지
서로 다른 신들의 목소리로부터도
더욱 공평해지는 악들로부터도
눈을 감으면 당신은 이 방을 찾고 있겠지
나의 비겁과
나의 졸렬함과 변명들과 뒹굴다가
서로를 훔치다가
서로의 창세기를 온종일 들여다보던 서툰 골목의 시간들을
나는 더 익숙해져야지
나의 방의 사라짐으로부터
나는 나의 방을 숨 쉬며
온종일 눈을 치켜뜨고 창밖의 분노와 희망의 욕망을 곱씹으며
이제 당신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고 해도
당신이
돌이켜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