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 - 이후의 방

사무엘럽 2021. 1. 28. 22:45

 

웅진북센 아무는 밤 259 민음의시, One color | One Size@1 오빠생각(일반판):김안 시집, 문학동네

 

 

 이 방의 익숙함을 키워야지

 당신이 돌이킬 수 있도록

 베란다 한 귀퉁이에 버려둔 깨진 화분에서 이름 없는 잡초들이 올라오고

 줄기와 줄기 사이 거미가 희끄무레한 집을 짓고

 당신은

 여기로 올 테지,

 이 방이 희미해져가기 전에

 이 방과 함께 숨 쉬던 살들과 뼈의 붉은 비밀들이

 당신의 부재와 함께 달아나기 전에

 당신이 보낸 작은 벌레들이라도 거미의 집을 찢고 들어올 테지

 그러니

 날 이 방의 귀퉁이들에 비끄러매야지

 컵 속에 담긴 우유가 단단해져가듯

 지나치게 선하던 한 친구의 흰자위에 검은 점들이 박히듯

 손톱 끝으로

 사라져가는 벽을 긁으며

 사라져가는 기둥을 세우며

 이 방을 성난 늙은 광장의 시간들로부터 지켜내야지

 서로 다른 신들의 목소리로부터도

 더욱 공평해지는 악들로부터도

 눈을 감으면 당신은 이 방을 찾고 있겠지

 나의 비겁과

 나의 졸렬함과 변명들과 뒹굴다가

 서로를 훔치다가

 서로의 창세기를 온종일 들여다보던 서툰 골목의 시간들을

 나는 더 익숙해져야지

 나의 방의 사라짐으로부터

 나는 나의 방을 숨 쉬며

 온종일 눈을 치켜뜨고 창밖의 분노와 희망의 욕망을 곱씹으며

 이제 당신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고 해도

 당신이

 돌이켜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