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 불효자는 웁니다

사무엘럽 2021. 1. 24. 23:31

 

친애하는 사물들:이현승 시집, 문학동네 생활이라는 생각 : 이현승 시집, 창비

 

 

 억수같이 쏟아지는 물줄기 앞에서

 불효자는 운다 청개구리처럼 운다

 효는 불효에서 완성되는 것이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불효자는 비로소 효자가 된다

 

 청개구리는 청개구리 새끼인데

 기대하는 만큼 실망하고 미워하는 만큼 닮아버리는 것은

 모든 새끼들의 정해진 운명이라서

 

 마침내 어미와 아비가 죽고

 새끼는 어른이 되어도 살갗 푸른 개구리이지만

 두려워해야 할 것은 파산이 아니라 파산의 절차이듯

 슬픔보다 통증이, 절망보다 피로가 먼저 찾아오는 것이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질 때

 사랑해야 하는 자에게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사랑받는 자에게 사랑받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욕설처럼 화끈거리고 치욕처럼 달아오르는

 밥의 힘으로 푸른색을 유지하면서

 청개구리는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