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 성분들

사무엘럽 2021. 1. 24. 23:28

 

친애하는 사물들:이현승 시집, 문학동네 생활이라는 생각 : 이현승 시집, 창비

 

 

 식칼은 마지막 먹이의 피맛을 기억하고 있다

 어쩌다가 양파를 썬 칼로 배를 깎을 때

 우리는 왜 여러 개의 칼이 필요한가를 깨닫는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그것은 아마

 양파의 비교 우위를 설명해주겠지만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모여들었다가 넘치는 피

 베인 손가락을 빨며 제 피의 맛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비슷한 맛을 가진 피의 형제들이다

 

 내 피는 어머니에게 수혈할 수 없지만

 우리는 비슷한 침을 갖고 있어서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함께 입맛을 다신다

 

 양파의 껍질을 벗기면서

 우리는 같은 성분의 눈물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