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 갈증의 구조

사무엘럽 2021. 1. 22. 09:01

 

친애하는 사물들:이현승 시집, 문학동네 생활이라는 생각 : 이현승 시집, 창비

 

 

 찬물 한 모금 마신다

 물줄기가 뚜렷하다

 목과 식도가 잠깐 인화된다

 

 뜨거운 시멘트 위로 물이 흐른 자국이 있다

 흐르는 물줄기를 타고 가는 흙먼지처럼

 젖지 않고 떠가다보면 우리는 만날 것이다

 

 메마르고 거친 나무의 표면을 만지면서

 당신의 손끝은 다시 어떤 예감에 사로잡히고

 비가 올 것 같다

 

 예감이란 깃털처럼 가볍지만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은 그 깃털이다

 가령, 왜 비 오는 날은 늘 빨래하는 날인가

 이불의 눅눅한 냄새는 언제나 고민이지

 두 번씩 빨아 더욱 깨끗한 나의 이불들

 

 늦은 오후에 여우비가 시작되면

 술집을 찾아드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언제나 물의 한가운데서

 목이 마르다